[송현칼럼/4월 28일] 국격과 공교육

국가에도 품격이 있다는 말들을 한다. 그리고 간혹 ‘국격(國格)’을 높이자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 물론 ‘국가의 격’이라는 말이 요즘에 생긴 것은 아니다. 1887년 조선 왕조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끌어올린 것이나 지금의 서울을 경성(京城)이 아닌 황성(皇城)으로 높여 부른 것 모두 스스로 격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후 23년 뒤인 1910년 대한제국은 자신의 국호를 버려야 했다. 형식적으로 국격을 높이려는 시도는 밀물 때 모래성을 쌓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국격을 높이는 시도는 정부나 기업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이뤄진다. 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교육 개혁도 바로 국격을 높이기 위한 시도다. 특히 영어 공교육 강화를 통해 우리나라를 세계 중심 국가로 발돋움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눈에 띈다. 의무교육인 초등학교에서 중학교까지의 공교육 과정에서 영어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글로벌 시민으로 가는 첩경이라고 정부는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영어가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 때문에 유래된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를 생각해보자. 국내 기업에 있는 수많은 인재들의 영어 소통능력이 부족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생겼겠는가. 영어 자체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규칙을 체화하지 못해 우리의 가치가 디스카운트된 것이다. 결국 영어로 국격을 키우겠다는 것은 중요하지만 근본 문제는 아닌 듯하다. 영어보다는 글로벌 시민으로서의 도덕의식을 심어주는 게 새 정부의 더 중요한 과제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공교육, 특히 초등교육에서 선진 시민교육을 실시해 세계 중심 국가의 당당한 일원으로서 격조 높은 인품을 지닌 국민을 길러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초등학교 때부터 줄서기와 같은 기초적 공중질서를 철저히 지키도록 강조하고 남에 대한 배려의식을 키워주고 양보(after you)교육을 강화하는 것 말이다. 이러한 공교육을 통해 글로벌 시민의식이 체화되면 타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침범하면서 쓰레기를 무단으로 투기해 국제적인 망신거리가 되거나 떼법ㆍ정서법에 기대 시위 저지선(police line)을 죄의식 없이 무시해 해외 토픽이 되는 일이 사라질 것이다. 또 해외 호텔과 식당ㆍ공항에서 눈살을 찌푸릴 행동을 해 한류(韓流)로 키워놓은 코리아 프리미엄(premium)을 스스로 갉아먹는 행동은 점차 없어질 것이다. 또한 그러한 과정이 수년, 수십년간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정치지도자들은 성실과 정직을 으뜸가는 덕목으로 삼아 행동하고 기업과 기업인은 신뢰와 존경을 받고 국민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 가도 떳떳한 일류 국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사학자 아널드 조지프 토인비는 “사회와 문화가 흔들리지 않고 유지되는 것은 그 나라의 국민정신에 달려 있다”고 했다. 건전한 가치관을 중심으로 한 올바른 국민정신 없이 경제력만 가지고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의미다. 국민 개개인의 품격의 총화인 나라의 품격은 어쩌면 경제력보다 더 중요한 요소다. 1년 정도 지난 이야기지만 세계적인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지난 2007년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우리나라가 오는 2050년에 1인당 소득에서 미국을 위협하는 세계 2위 국가로 발돋움한다고 전망했었다. 이러한 전망이 오판인지 아닌지는 2050년 우리의 소득만이 증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의 국격이 대답해줄 문제다. 아직 멀게 느껴지는 2050년. 우리가 얼마나 돈을 버는지 또 우리가 얼마나 영어를 잘하는지보다는 얼마나 우리가 안팎으로 세계 지도적인 국가로서 대접받을 수 있는지가 핵심인 것처럼 말이다. 선진 국가, 선진 국민으로 당당히 평가받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글로벌 시민교육을 공교육의 핵심 목표 중 하나로 삼아 준비해야 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