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정) [기자의 눈] 형소법 개정, 서두르지 말아야
요즘 검찰의 모습은 호떡집에 불난 꼴을 연상케 한다. 대검을 비롯해 서울ㆍ지방 할 것 없이 검찰청이 온통 전투 분위기에 사로잡혀 있다.
도발한 쪽은 형사소송법 개정초안을 다듬고 있는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아하 사개추위)다. 사개추위의 연합 또는 우호세력으로는 일단 법원이 있는 듯하다. 또 청와대가 원군으로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검찰은 이 개정초안이 수사권 자체를 무력화시킨다며 배수진을 칠 태세다. 지방에서 평검사 회의가 잇따르며 검사의 집단사표, 즉 ‘검란’ 소문도 돈다. 검찰이 작성한 피고인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부인하려 한다는 게 반발의 주된 이유란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취임 한달 남짓 된 김종빈 검찰총장이 지난달 29일 법조1진 기자단과 점심을 먹었다. 취임식날 기자실을 들러 약속한 오찬자리였다. 이날 김 총장은 “차라리 ‘검증’된 미국식 제도로 가자”며 국민생활에 지대한 변화를 가져올 형소법 논의를 충분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약 이대로 형소법이 시행되면 성폭력ㆍ조직폭력ㆍ뇌물죄와 같은 은밀한 범죄는 자칫 범인을 무죄방면하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귀담아 듣지 않을 수 없는 얘기다.
개정 형소법 탓에 증거부족으로 풀려난 흉악범ㆍ파렴치범ㆍ부정부패사범이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는 말도 안되는 사태가 발생한다고 치자. 이를 지켜보는 피해자와 그 가족, 국민들은 상상할 수 없는 분노와 고통을 겪을 것이다. 사회질서가 송두리째 무너질 수밖에 없다.
사개추위의 한 관계자는 수사권이 약화돼 범죄의 천국이 된다는 지적에 대해 “근거 없는 얘기”라며 “수사권을 불리하게 하려는 게 아니라 수사를 선진화하자는 취지”라며 펄쩍 뛰고 있다. 30일 사개추위 공청회에서 합의안 마련이 실패한 가운데 이런 공방을 지켜보는 국민들로서는 매우 불안하고 헷갈릴 따름이다.
검찰 말처럼 법의 허점 때문에 자신의 가족이나 친지를 성폭행한 흉악범이 처벌을 면한다면 정말 전부 이민을 떠나든지 사개추위를 법정에 세워야 할 노릇이다. 또 한편으로는 ‘제도 이상의 권력’을 지키려는 검찰의 고도로 계산된 집단반발은 아닌지 의구심도 든다.
사개추위는 오는 9일 차관급 회의를 거쳐 16일 장관급 회의에서 형소법 개정안을 확정짓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논란이 증폭된 이상 차제에 기존 일정이 어떻든 한점 불안도, 의구심도 남지 않게 원점에서 다시 개정안을 철저히 재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뜸을 잘 들여야 밥맛이 좋은 법이다. 1년2개월여를 준비했다지만 50년 만에 형소법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이다. 새털같이 많은 날, 급히 서두를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