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의 연방정부 폐쇄(셧다운)를 낳은 건강보험개혁법안(오바마케어)는 단순히 건강보험 대상을 확대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전면 대결을 벌인 것도 '큰 정부냐' '큰 시장이냐'라는 미국 내 해묵은 갈등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오바마케어의 운명에 따라 미국 사회가 복지확대 여부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벌이면서 중대한 이념적 방향타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케어는 지난 1965년 국가 주도로 노인 건강보험인 메디케어를 도입한 이래 가장 중요한 복지정책으로 꼽히고 있다. 2014년 1월에 발효될 예정이며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한 수혜계층 확대와 정부 보조금 증액 등이 골자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최근 기초연금의 재원마련을 둘러싸고 공방을 벌이고 있듯 오바마케어 역시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가입자 수가 내년 700만명, 오는 2017년 2,400만명 등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2023년에는 정부 보조금이 무려 1조1,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때문에 오바마케어가 당장 저소득층의 환심을 살지는 몰라도 정부 재정에 부담을 주고 미래 세대를 착취하는 도구로 전락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더구나 일정 소득 이상인 중산층도 오바마케어를 악용하는 바람에 선의의 납세자만 피해를 보고 보험료 부담이 늘어난 기업의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이 같은 부작용 때문에 미 국민 여론도 40대50 정도의 비율로 반대가 우세하다.
하지만 오바마케어를 둘러싼 이전투구에서는 공화당이 더 손해를 본 것으로 나타나 미 국민이 어떤 최종 선택을 내릴지는 아직 미지수다. '큰 정부를 통한 복지확대냐' '시장 효율성 강조냐'라는 미국민의 선택도 현재진행형이라는 뜻이다.
현재 미국 내 여론은 이미 2010년 최종 승인된 법안의 수정을 요구하며 예산안 처리를 지연시킨 공화당에 대해 '극단주의자' '불통' 이미지로 낙인 찍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들은 셧다운으로 정치권 전반의 이미지 실추가 불가피하지만 오바마케어 수정을 외치며 예산안을 거부한 공화당이 더 큰 상처를 입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피트 웨너 공화당 정치고문도 "이번 셧다운은 공화당이 무정부주의·허무주의자와 강탈자들의 모임이라는 최악의 고정관념을 뿌리 박히게 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시했다.
특히 공화당은 당내 강경보수 그룹인 '티파티'는 물론 존 베이너(오하이오) 하원 의장의 리더십도 흔들리는 양상이다. CNN 설문조사에 따르면 현재 티파티에 부정적인 여론은 54%로 이 그룹이 결성된 이래 최고치를 찍었다. 비즈니스위크는 "베이너 의장은 오바마케어가 논의되던 2009년부터 여당과 협상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를 놓치고 스스로 함정을 팠다"며 책임론을 제기했다.
다만 이번 셧다운으로 민주당과 오바마 대통령이 치를 정치적 대가도 적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전문가들은 시리아 등 중동 문제와 안보당국의 개인정보 수집 스캔들이 겹치며 50% 이하의 지지율을 보이는 오바마 대통령이 셧다운에 따른 경제혼란이 가중돼 정국운영에 더욱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