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 간의 대화록을 둘러싸고 대통령 선거판이 시끄럽다. 분단국가의 현실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후보 간의 통일이나 대북 정책을 두고 벌이는 논란이 아니고 대화록이 있다 없다, 보자 안 된다 하고 싸우는 형상이 삼류 코미디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워낙 후보들의 대선공약이 유사하다 보니 그나마 편 가르기하기 좋은 남북 문제가 한여름의 태풍처럼 힘을 얻고 있다. 또 한번 이념갈등으로 한반도가 태풍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통일에 대한 염원은 다시 노랫말 속으로 사라질 것 같은 걱정이다.
북한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문득 최근에 들은 첫사랑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평소에는 잊고 살다가도 가끔은 궁금해지는 게 첫사랑이란다. 그래서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보거나 페이스북 등을 뒤져 근황을 알게 되면 반응은 대개 두 가지란다. 상대가 자기보다 나은 짝을 만나 잘 살고 있으면 다행스럽기는 한데 배가 아프단다. 그런데 반대로 그 첫사랑이 형편없는 짝을 만났거나 사고 등으로 어렵게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가슴이 아프단다. 서해교전에서는 서로의 목을 노리는 적인데도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이나 속출하는 아사자 소식에는 가슴이 아픈 게 북한이다. 북한은 잊고 살 수도 서로 모르는 체 할 수도 없는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첫사랑 같은 존재인 것 같다.
지난 1972년 '7ㆍ4 공동성명'으로 남북이 통일을 논의하기 시작한 후에도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은 계속됐다. 대북정책도 정권에 따라 강온전략을 되풀이해왔다. 때로는 전쟁의 위기를 겪기도 했고 또 때로는 통일에 대한 분위기가 고조되기도 하면서 진전돼왔다. 그런데 남북관계의 시계가 멈춰 선지 4년이 지났다. 최근 중국과 대만의 관계를 보면 남북한의 처지가 안타까워 보인다. 중국과 대만 간에는 1958년의 대규모 금문도 포격 사건 외에도 크고 작은 군사적 충돌이 있었다. 1996년 대만 총통선거를 앞두고 미사일 위기를 맞았고 2002년에는 해안에 미사일 배치 증강으로 전쟁위기를 맞았다. 남북한이 정상회담을 하고 남북 간에 관광으로 인적교류의 문이 열리고 개성공단을 구상할 때만 해도 중국과 대만이 우리의 관계를 부러워했다. 그 후 불과 12년 만에 처지는 돌변했다. 중국과 대만은 이념적 대치, 군사적 긴장 상황에서도 정경 및 민관 분리, 인도주의적 교류 우선의 원칙을 지켜냈다. 그 결과 양국은 2010년에 '양안경제협정', 2012년에는 급기야 '화폐청산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경제통합의 시대를 앞당기고 있다.
이제는 우리도 한반도의 미래를 내다보며 남북관계의 멈춰선 시계를 다시 움직여야 한다. 시작은 쉬운 것부터 해야 한다. 소통하는 일이다. 이야기를 나누면 마음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면 통일 같은 큰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 휴전선에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미사일 사거리를 늘이는 것이 안보에는 필요조건이지만 남북 간의 문제를 풀어가는 충분조건이 되지는 않는다. 테이블을 마주한 회의만이 대화가 아니다. 관광객이 오가며 주고받는 눈인사도 대화이며 개성공단에서 근로자와 함께 일하는 것도 대화이다. 이산가족이 만나 흘리는 눈물이나 유아용 이유식이나 폐결핵 백신을 전하는 것은 가슴으로 하는 대화이다. 이런 가슴의 대화를 시작으로 협상 테이블의 문이 열리게 마련이다. 남북의 문제를 푸는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대화하지 않고 이뤄지는 것은 없다.
첫사랑 이야기의 끝이 있다. 개중에는 첫사랑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단다. 이들은 배나 가슴은 아프지 않은 데 머리가 아프단다. 그래 설사 우리 머리가 좀 아프더라도 대화를 하면서 통일한국의 꿈을 키워 갈 수 있는 슬기로운 사람이 다음 지도자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