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奎植(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국민건강보험법의 국회 통과로 지역보험의 통합에 이어 직장보험 마저 통합케 돼 한국노총을 중심으로 노동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 법안은 국회 심의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정부가 발의한 법안이 보건복지위원회에서는 통합 후 2년간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간의 재정을 분리할 수 있게 했고 법사위 소위에서는 재정의 완전분리로 수정을 했는데 본회의에서는 의장직권으로 수정안을 무시해 심의절차상의 적법성 문제가 지적되기도 한다.
의료보험 통합의 근본적인 문제는 지역가입자들의 소득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데 있다. 도시자영자의 경우 25% 정도, 농어촌주민은 57% 정도만 소득자료가 있는데 그나마 실제소득에 비해 턱없이 낮다. 이런 현실에서 의료보험을 통합하게 되면 보험료 부담은 노출되는 근로소득을 갖는 근로자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통합은 근로자로 하여금 소득세에 이어 보험료까지 2중으로 부담시키고 부정직한 소득신고자가 이득을 보도록 해 사회정의에도 모순을 불러일으킨다.
정부는 직장근로자의 재정이 이전되지 않도록 자영자들의 추정소득을 통한 보험료 부과체계의 설계를 구상하고 있다. 실제소득은 본인만 아는데 세무서도 아닌 보험공단이 주민의 소득을 추정하겠다는 것은 국세청과 보험공단의 업무영역에 대한 혼동이란 중대한 모순이 제기된다. 또한 자영자의 업종, 사업장규모 및 위치 등을 감안해 보험공단이 소득을 추정하겠다는 것은 세금의 인정과세 방식과 다를 바 없다. 국세당국도 인정과세의 문제가 많아 지난 95년부터 폐지했는데 이를 보험료부과에서 사용한다면 민원대란만 일으킬 것이다.
세계 어느나라도 보험료와 같은 조세성격의 부과금에 추정소득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모순이 계속된다. 그리고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간에 재정이전이 안되도록 하겠다면 왜 통합을 추진하는가?
지역조합을 통합한 후 저소득층의 보험료가 경감돼 형평성이 개선되었기 때문에 통합이 정당했노라고 보험공단은 홍보하고 있지만 믿기 어렵다. 지역보험의 보험료부과 방법을 보면 소득과 관계없이 젊은 식구가 많은 가정은 보험료가 높아지게 돼 있다. 그 결과 법무사, 약사 등 소득이 높은 층에서 보험료가 인하된 사람도 많으며 파출부, 일용직 근로자중에 보험료가 올라간 사람도 많다. 실제소득을 제대로 모르는 현실에서 통합이 형평성을 보장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도 모순이다.
통합의 또 다른 문제는 보험료 부과기준이 근로자와 지역주민간에 차이가 나는 점이다. 근로자는 임금소득만을, 지역주민은 소득과 자산을 토대로 보험료를 부과토록 하고 있다. 단일 재정을 사용하면서 부과기준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양 집단간의 갈등만을 조장시키는 모순이 있다. 지역가입자로서 자신의 보험료가 직장 가입자보다 높다고 생각해 직장가입자의 자산에 대해서도 보험료 부과를 요구할 경우 두 짐단간의 이해충돌 문제는 심각해진다.
국고지원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재정이 부실해진 지역조합 때문에 통합하게되면 건실한 직장조합까지 부실해질 것이다. 지역가입자에 대한 보험료 부과를 제대로 하기 어려우면 통합보험은 재정적자를 면치 못하게 된다. 적자분은 근로자가 지거나 아니면 정부재정지원으로 해야 하는데 정부재정지원 확대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결국 통합으로 인한 재정압박은 근로자의 몫이 되는데 근로자의 부담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의료기관에 대한 통제와 의료의 질 저하로 귀결될 수 밖에 없어 국민의료의 장래가 심히 우려된다.
전국민을 단일 관리 하는 영국이나 스웨덴의 제도가 부러우면 세금으로 재원을 조달해 보험관리업무를 없애야 관리비도 절감되고 보험증도 필요없이 편리하게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다. 보험방식을 유지하는 한 자격관리를 위시한 보험업무가 그대로 있어 통합에 따른 관리비 절감효과는 크지 않고 근로자의 부담만 가중시키는 문제가 있다. 계층간 소득포착률이 다르고 지역간 의료자원의 분포가 다른 나라에서 보험방식으로 의료를 보장하는 경우 유사집단끼리 보험조합을 구성하는 것이 사회보장의 원칙에도 맞고 선진국의 경험과도 일치한다.
동구권 몰락 이후 의료보장분야에서도 경쟁원리를 도입코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 선진국의 동향이다. 국민의 정부는 시장경쟁을 국가경제운영의 기본원리로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보험에서는 선진국들이 도입하는 경쟁원리를 외면하고 통합이라는 독점적 형태의 개혁을 단행했다. 국가 경제의 운영원리와 하부체계인 의료보장에서의 운영원리를 달리하고도 과연 국가 경쟁력이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