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시드니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임기 중 마지막으로 각국 정상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는 표면적 배경 외에도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를 동시에 알리는 무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선순환의 모드에 올라선 북핵 문제와 관련해 다자 간 정상회동과 별도로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1시간여의 ‘장시간 회동’을 갖는 점은 이번 순방의 백미로 꼽힌다. APEC 정상회의를 갈무리하는 정상 선언문에서 북핵 문제의 진전 사항을 포함시키는 방안이 추진 중인 것도 우리에게는 중요한 대목이다.
◇북핵ㆍ기후변화 특별선언문 합의 도출할까=‘역내 공동체 강화 및 지속 가능한 미래 건설’이라는 주제 아래 열리는 이번 회의의 의제는 기후변화 문제와 역내 경제 자유화 등 크게 두 가지. 이중 기후변화 부문은 회의를 앞두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거듭하면서 핫이슈로 부상한 상태다. 개최국인 호주를 비롯한 선진국은 이번 회의에서 오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5% 줄인다는 내용에 동의하는 특별선언을 채택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 문제는 개도국들이 떨떠름하게 여기는 의제라는 점에서 특별선언문 채택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계속될 전망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기후변화 문제와 관련해 선진-개도국 간 이견이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선언문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기후변화가 각국의 공통 관심사라면 우리의 핵심 과제는 북핵 문제다. 부시 대통령에게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연내 핵 불능화 선언은 부시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로 꼽힌다. 결국 부시 대통령은 중국ㆍ러시아ㆍ일본 등과 북핵 문제에 대한 공동 노선을 구축하는 데 외교력을 집중해 북한이 연내로 설정된 비핵화 완료의 마감 시간을 지키도록 압박할 것으로 보이고 이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노 대통령에게도 중요한 지렛대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 정상, FTA 공동 비준 촉구할 듯=7일 오후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은 당초 10월 초 개최될 계획이었는데 남북 정상회담이 연기되면서 불가피하게 APEC 회의 기간으로 앞당겨 열리게 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당초 한미 정상회담은 남북 정상회담을 설명할 목적으로 추진됐지만 남북회담이 연기돼 사전 협의를 갖는 시의 적절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실제로 부시 대통령은 이번 회의에서 노 대통령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낼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이 최대 현안으로 대두된 시점에서 이번 회의의 결과가 남북 정상회담의 의제 설정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한미 정상회담이 관심을 갖는 또 하나의 대목은 바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우리 정부의 경우 올 정기국회에서 비준을 앞두고 있는 상황인 점을 감안할 때 양국 정상은 이번 회담을 통해 의회에 조기 비준을 촉구하는 합의문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열릴 한중 정상회담도 관전 포인트다. 북핵 문제에서 중국이 갖는 상징적 의미 때문이다. 양국은 또 이번 정상회동을 계기로 투자보장협정을 재개정할 계획이어서 경제적으로도 의미가 적지않다. 이와 함께 동계올림픽 선정지를 두고 치열하게 맞붙었던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회동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하지만 ‘일정상’의 이유로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은 점은 외교적 관례로 볼 때 석연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