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어려워지면 보험 해약 건수가 급격하게 늘어난다. 지난 2008년 10월 이후 특히 늘어났다. 10명이 종신보험에 새로 가입하는 사이 5명은 보험계약을 해지했다. 경제가, 가정경제가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방증이다. 종신보험 환급비율은 4년 이상 5년 미만으로 가입했을 때 평균 45.4% 수준, 10년 이상 15년 미만이면 평균 61.2% 정도다. 이렇게 중도해약을 하면 절반 가까이 손해를 보니 보험가입자들에게는 사실상 해약의 자유가 없는 셈이다. 제3자에게 자신의 보험계약을 팔 수 있도록 하는 보험전매제도를 생각해봐야 하는 이유다. 전매제도가 없는 우리로서는 해약 대신 선택하는 게 보험약관대출이다.
지난해 12월 말 가계대출 잔액 약 60조원 가운데 보험 약관대출 잔액은 약 36조원이나 된다. 여기에 보험가입자들이 부담하는 이자는 7%에서 10%가 넘는다. "아니, 내가 낸 보험료를 담보로 그것도 내가 낸 보험료의 전액이 아니라 절반밖에 안 되는 해약환급금 범위 안에서 대출을 받는데 왜 이렇게 이자가 비쌀까"라고 억울해 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대출받는 입장에서 묻고 따지기는 참 어렵다.
따져보자. 보험약관대출이 과연 대출일까. 2007년 대법원은 '해약환급금의 범위' 내에서 이뤄지는 '약관대출'은 보험사가 장래에 가입자에게 줘야 할 보험금ㆍ환급금을 미리 지급하는 '선급금'이라고 판결했다. 그래서 미국ㆍ영국ㆍ일본에서는 약관대출을 연체해도 연체 이자를 부과하지 않는다. 우리 금융당국도 3월 보험약관대출에 연체이자를 부과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간 꼬박꼬박 받아간 연체이자를 돌려준다는 이야기는 없다. 보험사 스스로 내놓을 리는 없으니 이는 억울한 연체이자를 낸 소비자와 그를 대리할 국회의 몫이다.
다른 문제는 약관대출의 적정이자는 얼마인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발상의 전환을 제안해본다. 약관대출은 보험사가 보험가입자에게 줄 보험금이나 환급금을 선지급하는 것이니 이자는 이를 계속 운용했을 때 얻게 될 '예정 이율' 그 자체만 받고 플러스 알파를 가산하지 말자는 것이다. 백보 양보해서 일본의 약관대출처럼 '예정 이율+1%' 같은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것도 검토해 봄 직하다. 내가 불입한 보험료의 해약 환급금이라고 원금 손실 우려가 전혀 없는 '약관대출'에 대해 계속 높은 금리를 내야 한다면 보험가입자는 정말 '보험사의 봉'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