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기업 적합 분야 헐값으로 종업원에/나머지 사업경영권 내년 전문인에 이양불황으로 구조조정이란 말이 최근 유행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오히려 대기업보다 구조조정하기가 힘들다. 오너가 한평생 이룩해놓은 사업을 가지치기하기란 사실 쉽지가 않다. 한 중소기업이 한계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새 유망사업으로 발빠르게 전환했다. 특히 이 업체의 오너는 모든 사업의 경영권을 전문경영인에게 넘기는 또다른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어 화제다.
전남 담양의 (주)티엘론(대표 이원호·51)은 단열자재인 폴리에틸렌폼(Poly Ethylene Foam·PE폼)을 만드는 회사다. 공장 벽체용으로, 강판에 이것을 붙인 폼판넬도 생산한다.
이원호 사장은 지난 7월 PE폼 가운데 무가교(NonCross Linked)폼 사업분야를 종업원인 공장장에게 넘겼다. 생산설비 일체를 포함해 지분의 80%를 아주 저렴한 값에 이전했다.
이 사업분야는 (주)동방이라는 이름의 독립법인으로 새출발을 했다. 이사장은 20%의 지분참여만 있을 뿐 사업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이사장이 직원에게 이 사업을 넘긴 것은 일정 규모 이상의 회사가 경영하기에는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PE폼에는 가교(Cross Linked)폼과 무가교폼이 있다. 가교폼은 이슬이 맺히지 않고 단열성능도 우수하다. 방진·흡음효과도 뛰어나고 불에도 잘 타지 않아 수요가 늘고 있다.
반면 무가교폼은 생산설비등 투자비는 적게 들지만 상대적으로 성능이 떨어진다. 그래서 과일포장재나 나들이용 돗자리등 특정분야에서만 쓰인다.
1년 매출 1백억원의 회사가 이 사업을 계속 하기에는 인건비등이 많이 들어 오히려 적자라는 것이 이사장의 생각이었다. 따로 떼어 소규모로 알차게 운영하는 것이 더 좋다고 결심했다.
『설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구체적인 성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티엘론은 부담이 되는 사업분야를 없애서 좋고 동방은 자신의 체구에 맞는 사업을 할 수 있어 일거양득입니다』
이사장은 대신 기존 사업의 노하우를 살려 경량철골구조물사업을 새로 시작하기로 했다. 이것은 철제 빔을 생산해 조립식 건축물을 짓는 사업이다. 올해말 철제 빔 생산설비가 들어오는 대로 공장, 창고, 체육관등의 골조건설수주에 나설 계획이다.
티엘론은 지난해까지 매년 20∼40%씩 매출을 늘리며 고속성장을 계속했다. 그런데 올해 매출은 지난해의 1백억원과 비슷하거나 조금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사장은 아무리 불황이라지만 기본적으로 회사경영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언젠가부터 기술개발이나 생산성 향상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같아요. 나이가 들면서 사고하는 틀도 고정됐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사장은 내년에 가교폼과 폼판넬사업분야를 전문경영인에게 넘기기로 결심했다. 경영자가 달라지면 회사분위기도 달라질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이사장은 회사직원 가운데 마땅한 사람을 골라 경영을 맡길 계획이다. 정 없으면 외부에서 초빙할 생각도 갖고 있다. 자신은 대신 국내 판매망 관리와 해외 판매망 개척에만 신경 쓸 방침이다.
『조직은 살아있어야 합니다. 고이면 썩게 마련이죠. 가장 썩기 쉬운 것은 정점인 오너의 머리입니다』 이사장의 경영철학이다.<담양=한기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