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하는 경찰관 아버지의 자리를 채우는 대를 이은 딸, 힘들다는 수사업무에 20년간 손발을 맞춘 형제 경찰관...
10월21일은 10만여 경찰의 `생일'인 59회 경찰의 날.
경찰이라는 일 자체가 `평범'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히 남의 이목을 받는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 경찰의 날은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 노원서 부녀 경찰관
"아버지 떠난 자리 제가 채울께요"
서울 노원경찰서에도 부녀경찰관의 활약으로 어느 때보다 활기에 차 있다. 주인공은 이 경찰서 정보통신계 김정휴(57) 경사와 여성청소년계 김영정(28) 순경.
딸 영정씨만한 나이때 경찰에 입문한 김 경사는 올해 12월이면 경찰서를 떠나지만 자신의 빈자리가 허전하지 않다. 영정씨가 5월 순경 계급장을 어깨에 달고 같은경찰서에 발령을 받아 부임했기 때문이다.
경찰관 임명장을 받고 노원서로 첫 전입을 온 김 순경은 경찰서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아버지와 함께 근무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기도 하지만 `부녀 경찰관'이라는 별칭이 부담이 되기도 한다.
김 순경은 강직하고 늠름한 경찰관인 아버지와 함께 출ㆍ퇴근을 같이 하며 도움을 받을 수 있기도 하지만 혹시나 일을 잘 못하면 올해 12월 30년간 몸담은 경찰서를 정년을 맞아 떠나는 아버지에게 자칫 누를 끼칠 수도 있어서다.
김 순경은 "경찰이 된지 이제 반년남짓이지만 아버지가 경찰관으로서 걸어온 길을 생각하니 숙연해진다"며 "평소 청렴과 봉사를 강조해 온 아버지에게 깨끗한 경찰,도움이 되는 경찰관으로서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버지를 이어 경찰관이 된 만큼 `경찰의 꽃'인 강력계 형사에도 도전해 볼 생각"이라며 "`베테랑'이 돼 가는 딸을 아버지가 꼭 지켜봐주었으면 한다"고말했다.
◆ 중부서 형사계 여경 `삼총사'
서울 중부경찰서에는 다른 경찰서에서는 볼수 없는 특별한 여경 `3인방'의 활약이 눈에 띈다.
중부서는 올해 3월 여성 피의자와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대(對) 여성범죄만을 전담하는 여경을 형사계에 배치해 톡톡히 효과를 보고 있다.
남자 경찰도 힘들다는 형사계 업무를 자진한 이들 여경 3인방의 맏언니인 류미자(29) 순경은 유도 3단의 실력자로 2000년 경찰에 투신, 서울청 여경기동대 등에서활약한 경력이 있다.
3년차 형사인 장지영(28)ㆍ김미옥(25) 순경은 모두 유도 1단과 태권도 2단의 유단자로 무도와 체포술 교관까지 담당할 정도로 뛰어난 `무공'을 자랑하고 있다.
이들만이 갖는 `강점'은 수치심과 겁에 질린 여성 피해자의 마음을 녹여 내는능력이다.
여성범죄조사실에서 단 둘이 남성 가해자의 `흉'을 보면서 같은 여성으로서 고개를 끄덕이다 보면 사건의 실마리를 풀 수 있을 뿐 아니라 피해자의 상처도 어느정도 치유된다는 것.
류 순경은 "남자 피의자들이 종종 나이어린 여자 형사라고 얕보기도 하지만 성추행 사건 등 여성피해자가 경찰서에 오는 경우엔 남자 형사와 달리 피해자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 사건을 쉽게 해결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 방배서 형제 강력반 형사
"다시 태어나도 강력반 형사를 할 겁니다.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니까요.."
서울 방배경찰서에는 25년동안 함께 경찰관 생활을 해온 형제가 있다. 서울 방배서 강력반장 박학준(51) 경위와 같은 서 형사계장 박학동(47) 경감.
형인 박학준 경위는 지난 76년에, 동생인 박학동 경감은 80년에 각각 경찰에 임용됐고 둘다 방배경찰서(당시 관악경찰서)에 인사발령을 받았다.
박 경위는 1986년까지 방배서에서 근무하다 경찰청, 마포서, 총리실 산하 국민고총처리위원회를 거쳐 1998년 다시 방배서 강력반장으로 돌아왔고, 박 경감은 91년부터 13년간 강남서 강력반장을 거쳐 올해 2월 형이 근무하는 방배서에 배치됐다.
`강력반 형제'인 이들의 경력과 실적만큼은 `난형난제'다.
박 경위는 국민고충처리위에 파견됐던 1996년 국가행정발전 기여 공로로 대통령상을 수상했으며, 동생 박 경감은 1995년 33차례에 걸친 강도ㆍ강간 행각으로 국민을 불안케 했던 막가파 일당 9명을 검거한 장본인.
형제는 각자 걸어온 길만큼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어 박 경위가 마음씨 좋은 이웃 아저씨같은 `덕장(德將)'의 풍모라면 박 경감은 산전수전 다 겪은 `지장(智將)'의 인상이다.
5남매중 맏이와 둘째인 이들 형제는 명절은 커녕 아버님 제사도 못챙기기 일쑤고 사건이 터지면 아예 며칠씩 퇴근도 못하는 생활을 수십년 해왔지만 강력계 형사근무에 대한 애착만큼은 남다르다.
"가족에게는 0점, 직장에서는 일밖에 모르는 생활을 해왔지요. 그래도 아내가묵묵히 내조해주니 고맙게 생각합니다. 형과 가끔 소주 한잔 하면서 `다시 태어나도 옛날 팀원들을 모아 강력반 형사를 할 것'이라고 얘기하곤 합니다."(박경감)
"아버지를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두 아들을 모두 의경으로 보냈지요. 자식든든하게 키우고 나랏돈 받으면서 도둑잡으며 살아왔는데 부족한게 있나요. 다만 정년퇴직할때까지 몸 건강히 명예롭게 근무하다 퇴직하기만을 바랍니다."(박경위)
한 목소리로 강력반 형사로 살아온 지난 날에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다는 형제는후배 경찰들에게도 자상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사건이 끊이지 않는 방배서 형사계 사무실에서 어깨동무하고 나서는 두 형제.
오늘도 밤 11시부터 밤샘 검문 근무와 당직 근무가 기다리고 있는 이들 형제는 환하게 웃으며 서로 어깨를 두드리며 다시 각자의 일터로 돌아갔다.
(서울=연합뉴스) 경찰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