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위스키 역사의 산증인 김일주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 대표
국내 위스키 업계에서 ‘김일주’라는 이름은 고유명사로 통한다. 한국 위스키 역사의 산증인, 신화, 대부 등의 수식어가 꼭 따라다닌다.
그도 그럴 것이 두산씨그램에 입사한 그는 진로발렌타인스, 페르노리카코리아, 수석무역, 골든블루 등 굵직한 위스키업체들을 두루 거치며 올해로 위스키 인생 31년째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올 4월에는 ‘글렌피딕’으로 유명한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새로운 명패를 달았다. 한국 위스키 역사의 또 한페이지를 쓰려는 김일주(53·사진) 대표를 서울 송파동 본사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 31년은 진정한 전설을 쓰기 위한 역량과 경험을 비축한 것일 뿐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며 “진짜 전설의 첫 페이지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전설의 중심에는 그가 인생의 종착역이라고 생각하며 선택한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가 자리한다. 5대째 전통 장인기법으로 증류주를 생산하는 세계 3위 주류회사인 영국 기업을 한국 주류업계의 윗자리에 올려 놓고 싶은 게 그의 목표다.
“도매상이나 업소로 대변되는 고객들에게는 영원한 파트너로, 소비자들에게는 김일주의 작품은 모두 믿을 만하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 제 꿈입니다. 또 직원들에게는 임금이나 복리 후생 면에서 업계의 부러움을 사며 금요일 저녁이면 월요일 아침이 기다려지는 회사로 만들고 싶어요.”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는 지난 11월 11일부로 영국 본사가 100% 지분을 가진 외국계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그만큼 본사에서 세계 최대 위스키 시장인 한국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방증이다. 김 대표는 3~5년 이내에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를 업계 4~5위에 올려놓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수제 싱글몰트 위스키 ‘발베니’, 세계 판매 1위 싱글몰트 위스키 ‘글렌피딕’, 슈퍼 프리미엄 진 ‘헨드릭스 진’, 세일러제리 럼주 등 현재 4종의 포트폴리오만으로 5년 뒤에는 2배 이상의 매출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는 국내에서 몰트 위스키 회사의 이미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세계적인 증류주 회사로 거듭난다는 복안이다. 이를 위해 내년에 국내 시장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제품을 들여올 예정이다. 상반기에는 아이슬란드의 친환경제품인 프리미엄 보드카 ‘레이카 ’를 국내에 론칭하는데 이어 하반기에는 20년 역사의 세계 3대 스카치 위스키 중 하나인 ‘그란츠’로 시바스 리갈, 발렌타인, 조니워커에 도전한다. 뿐만 아니라 머지 않아 현재 국내 위스키 시장의 87%를 차지하고 있는 ‘임페리얼’과 ‘윈저’ 등의 시장 공략도 모색 중이다.
이르면 3년 후 소주 브랜드 출시도 새로운 전설의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겨놨다. “국내 위스키 시장은 현재 1조2,000억원 규모이지만 증류주의 하나인 소주는 3조5,000억원이죠. 위스키 시장만으로 비즈니스 영역을 한정지으면 성장의 제한이 생기지만 전체 시장 규모를 5조로 설정하면 미래 비전이 달라집니다.”
김 대표는 “한국의 음식 환경이 소주 같은 증류주에 잘 맞고 점차 음식과의 궁합을 중시하는 반주 시장으로 주류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면서 “럼, 진, 보드카, 위스키 등 다양한포트폴리오를 갖춘 윌리엄의 자원을 감안할 때 소주 시장 진출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고 이로써 한국 시장에서의 기회는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다국적기업의 공격을 앞둔 한국 소주회사의 취약점도 지적했다. “한국 소주는 원액과 디자인의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약점이 있다”는 그는 “소주 업체들이 다국적 기업의 공략에 맞서 준비하고 대비해야 하는데 정부가 40여 년간 소주 산업을 과잉 보호해 온 탓에 온실 속에서만 지내다 보니 취약한 부분이 있다”고 우려했다.
전남 무안 출신인 김 대표는 어려서부터 술과 인연이 깊었다. 선친은 1만평 가량의 고구마 농사를 짓는 부농으로 보해에 전분주정을 만드는 원료를 공급했다. 미취학 아동까지 온 동네 사람들이 농사일을 거들던 마을에서 딸 여섯에 귀한 아들로 태어난 그는 유일하게 책과 신선 놀음을 즐기는 귀한 자식이었다. 중학교를 수석 졸업할 정도로 수재였지만 갑작스레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장학생으로 광주 인성고에 입학한 그는 조선대학교를 졸업 후 큰 물에서 꿈을 펼치자는 일념으로 무작정 상경해 1983년 위스키 브랜드 ‘베리나인 골드’로 유명세를 떨쳤던 백화양조 영업사원으로 주류업계에 첫발을 디뎠다. 백화양조는 1985년 두산그룹의 OB씨그램에 흡수합병됐고 김 대표는 1986년까지 영업 최일선에서 ‘주류 인생’에 밑거름이 될만한 모든 것을 배웠다.
“당시에는 중간 주류 도매상들이 무자료를 남발하는 덤핑을 많이 하다 부침이 심해지면서 부도 직전인 곳이 많았습니다. 자금난으로 부도가 나던 상황에서 ‘분할 상환 아이디어’ 등으로 그런 곳을 공략해 도매상들과 함께 컸지요. 도매상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려면 도매상이 거래하는 업소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방문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거래처 숟가락 개수까지 알게 됐어요. 영업사원들이 문전 박대를 많이 당해서 업소 방문 공포증이 있었는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들르니 안되는 게 없더군요. 4년간의 현장 경험이 이후 30년 인생을 좌우하는 계기가 된 셈입니다.”
‘영업의 달인’으로 불리던 그는 1987년 마케터로 발령이 나며 고비를 맞기도 했다. 마케팅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었던 데다 외국인이던 당시 마케팅 담당 임원과 소통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영어가 미숙해 ‘영업으로 보내주지 않으면 사표를 내겠다’는 으름장도 여러번 놓았다고 그는 회고했다. 하지만 영어 미숙도, 마케팅 지식 부족도 그는 끈기와 노력으로 극복해냈다. “영어로 인한 모욕감은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심했어요. 매일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일어나지 못할까 봐 앉은 상태로 2시간 새우잠을 자고 5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7시에 나와서 8시 반까지 매일 듣는 연습만 했습니다. 5년이 지나니 들리기 시작해 말할 용기가 생겼고 7년이 지나니 듣고 쓰고 말하는 공포심이 사라지더군요. 2~3년간 마케팅 관련 서적도 닥치는 대로 사서 200권 가량 읽었어요. 그러면서 이론과 실무가 조화되는 희열을 맛봤지요. ”
김 대표는 1996년 두산 씨그램 시절 한국인 입맛에 맞춘 위스키 ‘윈저’의 기획부터 론칭까지 진두지휘해 윈저를 공전의 히트작으로 올려놓았으며 진로발렌타인스로 옮겨 마케팅담당 임원으로 일하던 2001년에는 ‘임페리얼’의 위조방지장치인 ‘키퍼캡’을 국내 최초로 도입해 ‘윈저’에 밀리고 있던 위스키 시장 점유율을 단숨에 역전시켰다. 또 세계적으로 유명한 발렌타인 17년산을 국내 시장에 성공적으로 론칭한 데 이어 2009년에는 수석무역으로 옮겨 700억 원 대로 성장한 저도 위스키 열풍의 핵인 ‘골든블루’를 개발 출시하는 등 국내 주류업계 역사에 굵은 획을 그어왔다.
김 대표가 보는 한국 주류 시장의 특성은 다양화, 고급화, 세계화, 양극화로 요약된다. 과거 접대 문화로 커온 주류 산업이 이제 함께 즐기는 사교의 장으로 변모한데 따른 것이다. 몇년 전만 해도 잘 나가던 17년산 위스키의 성장은 주춤한 반면 저렴한 가격대의 술이 잘 팔리는가 하면 가격 대비 가치를 추구하는 고객들은 비싼 제품에도 기꺼이 지갑을 여는 현상이 다양하게 공존하고 있다.
몇년간 지속된 위스키 시장 하락세도 내년 하반기쯤에는 멈출 것으로 김 대표는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지난 5년간 대기업들의 접대비 축소, 가격 인상에 대한 반작용 등 부정적인 요소들이 이미 시장에 반영돼 하반기에 바닥을 치고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
일이 건강을 지키는 방법이라는 그는 일이 곧 삶의 원동력이다. 중요한 결재 사항은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는 토요일 오전으로 미뤄두고 쾌속 시행을 위해 주말을 포함해 24시간결재를 원칙으로 한다. 김 대표에게 소원을 물으니 산수(80살)까지 룸살롱을 다니고 싶다는 의외의 답이 돌아온다. “룸살롱을 다니려면 건강해야 하고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하고 함께 갈 좋은 친구도 있어야 하며 술 한잔 하고 늦은 밤 귀가했을 때 바가지 긁는 아내도 함께 한다는 얘기 아니겠냐”는 그는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술과 함께 인생의 깊이를 즐겨가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이호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