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납품계약은 정부 또는 공공기관·공기업 발주 사업이다. 부도 위험이 없는데다 현금 지급은 기본이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수주에 성공하면 정부나 공공기관으로부터 계약 대금의 30~70%를 미리 받을 수 있다.
이런 장점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금운용이 빡빡한 중소기업들의 공공사업 수주 경쟁은 치열하다. 특히 평가항목 중 객관적 지표에 해당하는 재무제표와 신용도가 모두 열악한 재창업 기업으로서는 기술력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서는 선발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공공입찰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던 정보기술(IT) 분야 재기기업인 A대표 역시 기술력을 앞세워 수주에 성공한 케이스다. 그러나 과거 기업부도에 따른 신용불량 기록은 그에게 여전한 '주홍글씨'로 작용하고 있다.
A대표는 "보통 1억원 내외의 융자를 받는 중소기업진흥공단 재창업지원자금 선정 기업과 다르게 파산 면책 없이 부채를 모두 갚은 이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중진공을 통해 이례적으로 2억원을 대출 받았다"며 "이러한 이력과 기술성을 아무리 얘기해도 보증기관들은 현재 규정상 보증을 발행하기 어렵다는 답변만 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또 "예전부터 하도급 업체를 운영하며 이미 다른 기업의 수주 업무를 대행해 수차례 입찰을 따낸 전적이 있다"며 "하도급 업체로는 업력도 인정받지 못하고 기업이 성장하기도 어려워 직접 내 이름을 걸고 나섰지만 결국 다시 하도급 업체로 전락하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비단 A대표뿐만 아니다. 방송장비 제조사를 재창업한 B대표는 "2년 전 한 지자체 시제품제작지원사업자로 선정된 뒤 서울보증보험의 한 지점에서 보증서를 발급 받았다"며 "최근 유사한 사업에 또다시 선정돼 선급금 보증서를 발급 받으러 같은 지점을 찾았더니 지점장으로부터 신용도 때문에 담보가 필요하다는 답변을 들어야만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보증보험 관계자는 "신용도는 매해 달라질 수 있고 무엇보다 지점장이 보증상품과 내용, 업체 신용도를 고려해 자체적으로 보증서를 발급할 권한이 있다 보니 같은 업체라도 평가가 달라지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해명했다.
의료기기 제조업체를 재창업한 C대표도 재기기업인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는 이례적으로 얼마 전 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약 1억원의 신규보증을 계약하고 보증번호까지 부여 받았다. 개인 특허를 국가기관으로 이전한 경력과 6건의 특허, 3등급이라는 높은 신용도, 안정적인 매출 등 모든 항목이 모자람 없이 우수한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C대표는 그러나 발급 전 신보로부터 갑작스런 취소 통보를 받았다. 14년 전 기보가 캠코에 매각한 대위변제 채권 기록이 문제였다.
C대표는 "기보에서 구상채권을 캠코에 매각하며 이미 삭제한 개인정보를 신보가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은 개인신용관리법을 어기고 캠코를 통해 과거 이력을 조회했기 때문"이라며 "면책조정 후 성실한 경제활동으로 신용도를 3등급까지 올렸지만 과거 부실 이력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족쇄"라고 하소연했다.
신보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아무리 오래 전이라도 기보에서 부실 이력이 있는 업체인 걸 발견한 이상 기보와 정보공유를 하는 신보 입장에서는 원칙적으로 보증을 해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 등 공공기관 발주사업을 수주한 기업은 재기기업 중에서도 우수한 상위 업체로 봐도 무방하다는 게 중소 업계의 평가다. 실제로 입찰을 원하는 기업인은 3년 치 재무제표, 타 기관 유사 사업 수주 실적, 기술력 등을 소개하는 100~300쪽 분량의 제안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 후 전문심사위원들의 심층면접을 거쳐 우선 협상 대상자를 선발한다. 업력이 부족해 재무제표, 타 기관 수주 등의 실적이 없는 재기기업인들인 만큼 기술력이 탁월하지 않고서는 수주를 따내기 어려운 구조다.
이런 우수 재기기업들조차 보금융기관의 보수적 업무 규정에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지 못하는 데 대해 중소업계는 재도전 친화적 생태계과는 거리가 멀다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2월 정부는 역동적인 혁신경제(창조경제)를 위한 핵심과제로 '창업과 재도전의 역동성 회복'을 1순위로 꼽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재도전 생태계가 구축되려면 보증기관의 태도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