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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방연이 누군지 아나?"
이석채 KT 회장이 회의 석상에서 한 KT 임원에게 던진 질문이다. 방연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장수로 병법의 대가인 손빈을 시기해 그를 모함하고 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하다 일을 그르친 인물이다. 이 회장은 이같은 질문을 던져 해당 임원이 방연처럼 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한다는 사실을 에둘러 꾸짖은 것. 당시 질문을 받은 임원은 방연이 누군지 몰라 꿀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국내 이동통신사 대표 및 임직원들의 인문학 사랑이 각별하다. 특히 이석채 회장의 경우 사마천의 '사기'를 비롯해 나관중의 '삼국지' 등 중국고전을 통달하고 있어 관련 고사성어나 일화를 회의 중에 종종 언급하고 있다. 이공계 출신이 많은 KT 임원들로서는 이 회장의 발언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종종 있을 수 밖에 없다. KT 관계자는 "회의석상에서 이석채 회장의 나무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문학 고전에 대한 이해가 필수"라며 "덕분에 임직원들은 인문학 공부를 하게 돼 예전보다 사업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고 밝혔다.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은 아예 인문학을 위한 스터디 그룹을 꾸렸다. 한 달에 한 번꼴로 LG유플러스 본사에서 열리는 이 인문학 스터디에는 박지영 컴투스 대표 및 이은혜 동국대 교수 겸 뮤지컬 배우 등이 참석한다. 스터디 참가자들은 자신이 공부한 주제를 발표하며 이와 관련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얼마 전 까지만 하더라도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및 정혜신 아주대 정신과 교수 등도 스터디 구성원으로 참가했었다. 해당 스터디를 참관한 LG유플러스 관계자는 "생활에 동떨어졌다고 생각하는 인문학이 경제나 사회현상을 해석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지 알게 됐다"며 "각 분야의 유명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며 인문학 공부의 유용함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의 인문학 사랑은 광운대 총장시절부터 유명했다. 이 부회장은 '소통'을 위한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인문학을 중심으로 한 학부 통합을 추진한 바 있다. 현재도 직원들의 손금이나 관상을 봐주며 동양철학 등에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으며 이를 사업에 접목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SK텔레콤은 임원을 위한 '인문학 특강'을 을지로 본사 근처의 삼화빌딩에서 매주 개최하는 등 인문학 공부를 독려하고 있다. 해당 특강에는 김성근 SK와이번스 전 감독을 비롯해 각계 교수 및 영화 감독들이 강사로 나서 인문학 및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와함께 SK텔레콤 임원진의 경우 연간 1,000만원 한도 내에서 도서구입비 등을 문화비 항목으로 지원받을 수 있고 일반사원 또한 소정의 금액을 지급 받는다. 변재완 SK텔레콤 부사장은 "강의를 통해 인문학뿐만 아니라 각계 전문가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한층 시야가 넓어진 것 같다"고 밝혔다. 하성민 SK텔레콤 사장 또한 경영학을 전공한 문과 출신으로 인문학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IT 업계의 이러한 인문학 열풍을 학계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문형구 고려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IT는 최첨단 기술이 다뤄지는 분야이지만 이를 활용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며 "인문학 공부로 사람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지만 IT산업에 대한 통찰력이 생길 수 있으며 이 같은 IT업계의 인문학 열풍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