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산책/2월 7일] 이순(耳順)과 지천명(知天命)

황원갑<소설가·역사연구가>

기축년 새해를 맞은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입춘(4일)을 지나 정월대보름이 눈앞이다. 누구나 해가 바뀌고 나이를 한 살씩 더 먹을 때마다 자신의 나이에 관해 이런저런 소회를 품게 마련이다. 나이에 관한 의미를 다시 되새겨본다. ‘논어(論語)’에 이런 구절이 있다. 공자 가라사대, “나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30세에 스스로 섰고, 40세에 미혹되지 않았으며, 50세에 천명을 알았고, 60세에는 귀가 순해졌고, 70세에는 하고 싶은 바를 따르더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인생의 의미를 깨우친 나이
사람들이 흔히 쓰는 ‘불혹’이니 ‘지천명’이니 ‘이순’이니 하는 용어는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20세를 가리켜 약관(弱冠)이라고 한다. 이는 이 나이에 관례(冠禮)를 치르고 비로소 성인(成人)이 된 데서 유래했다. 새해에 성년이 된 젊은이들은 행동거지에 한층 신중하고 언행에 책임질 줄 아는 자세를 가져야겠다. 30세를 가리켜서는 이립(而立)이라고 했으니 이는 공자가 30세에 자립했다는 말에서 유래한다. 요즘은 혼인연령대가 늦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 나이에 이르면 가정도 꾸리고 사회구성원으로 자립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좋겠다. 40세를 가리키는 불혹(不惑)도 공자가 이 나이에 모든 것에 미혹되지 않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마흔 정도가 되면 웬만한 유혹에는 마음이 쉬 흔들리지 않는 자제력을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50세는 지명(知命), 또는 지천명(知天命)이라 하니 공자가 이 나이에 이르러 인생의 의미를 깨우쳤다는 데서 유래한다. 60세는 이순(耳順)이니 이 또한 공자가 이 나이에 이르러 무슨 일이라도 순순히 받아들였다는 데서 유래한다. 요즘 세상에는 나이 쉰을 넘겨도 천명을 모르고 예순이 돼도 철없는 사람이 많으니 참으로 딱하다. 70세는 종심(從心)이니 공자가 이 나이에 뜻한 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그런데 나이 70세를 일컫는 고희(古稀)란 말은 두보(杜甫)의 시 ‘곡강(曲江)’의 한 구절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에서 나왔다. 77세는 희수(喜壽). 희(喜)자를 초서로 쓸 때 ‘七七’처럼 쓰는 데서 유래한 일종의 파자(破字)이다. 80세는 산수(傘壽). 산(傘)자의 약자가 ‘八’을 위에 쓰고 ‘十’을 밑에 쓰는 데서 유래한다. 81세를 넘기면 망구(望九)라고 했으니 이는 90세까지 장수를 기원한 의미이다. 한편 91세는 백 살을 바라본다고 하여 망백(望百)이라 하고 99세는 백 살에서 한 살이 모자란다고 하여 백(百)에서 일(一)을 뺀 백(白)자를 써서 백수(白壽)라고 부른다. 자신의 나이에 칭하면 결례
그런데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간혹 가다가 보면 자신의 나이를 가리켜 불혹이니, 지천명이니, 이순이니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이는 결코 겸손할 줄 모르는 언행이다. 공자 정도의 성인(聖人)이라면 모를까, 자기 스스로를 가리켜 나이 겨우 40에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나이 겨우 50에 하늘의 뜻을 알고, 나이 겨우 60에 이순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어쩌다가 모르고 쓴다면 몰라도 알고서는 써서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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