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진정한 가속

동계 올림픽을 보고 있자면 겨울 스포츠만의 독특한 진행방식에서 무언가 배우게 된다. 처음부터 있는 힘껏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트랙경기와는 달리 시작은 서서히 진행되지만 나중에는 엄청난 가속이 붙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역대 동계 올림픽 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리는 우리 선수들을 보면서 ‘순간가속’에 몰두한 나머지 제대로 된 가속을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예컨대 책의 경우도 그렇다.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독자들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는 책. 책은 세월의 흐름이나 유행과는 동떨어져 보이지만 사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대형서점의 코너를 보고 있노라면 한 코너가 커졌다가 또 얼마 지나면 줄어들거나 아예 사라져서 다른 분야와 섞이는 것을 알게 되는데 컴퓨터 서적, 재테크 책 등은 이런 대표적인 예이다. 어학이나 자기개발ㆍ건강관리 같은 책이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언제 어느 때고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같은 필독 서적들은 기존의 출판물은 물론이고 앞으로 나올 신간들과도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무언가 자신만의 독특한 비법을 내세우곤 한다. 예를 들어 중학교 교재에서 다시 시작하는 영어, 포도만 먹는 다이어트, 아침 일찍 일어나는 방법처럼 한번 들으면 강렬한 이미지는 남기는 것을 선호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이는 독자를 구매자로 바꾸기 위한 노력일 뿐 사실 강한 이미지만큼 효과는 강력하지 않다. 이제 3개월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2006년, 작심삼일을 무사히 넘겼더라도 작심 삼개월이 되지 않으려면 올해 초 세운 목표를 점검해보자. 혹여라도 충격을 내세운 과시적인 목표였다면 과감하게 수정하는 게 어떨까. 완벽하지 않은 게 우리네 삶이기에, 금연을 목표로 세운 사람의 경우 단 한 개피의 담배라도 피우면 목표는 무너졌다고 생각하고 다시 흡연을 하곤 하는데 이는 옳지 않다. 아침형 인간으로 거듭나기를 원했지만 늘 주말마다 일어나기가 버거워 고생을 한다면 주말은 예외로 풀어줘도 된다. 매주말 등산을 하기로 했다면 한두주 쉬었다고 없던 일로 해서는 안된다. 그게 무슨 목표달성이냐며 완벽주의를 벗어나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한다면 한번쯤 다시 생각해보자. 목표의 진정한 의미는 정확하게 이를 이뤄나가는 데 있지 않다. 이보다는 오히려 꾸준히 실천해나가면서 조금씩이라도 목표에 다가서는 편이 낫다. 가다가 중지하면 아니간만 못한 게 아니라는 생각으로 차근차근 진행하자. 급하게 빨리빨리를 외치며 순간가속을 하다 보면 반짝 선두에 설 수도 있지만 힘이 떨어지면 뒤로 처질 수밖에 없다. 3년, 4년간 꾸준히 그리고 서서히 무언가를 이뤄나간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어학 실력을 높이고자 한다면 하루에 십분씩이라도 한 다이얼로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게 낫다. 일년 해봐야 삼백여개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이렇게 꾸준히 해나간다면 하루 몇시간씩 집중해서 몇 달 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게 완벽하게 자기 것을 만들 수 있다. 다이어트를 계획한다면 하루 세끼 균형 잡힌 식단을 하며 평소보다 조금씩 양을 줄여나가는 것으로 시작하자. 운동 없이는 결코 살을 뺄 수 없다고 생각하되 무리하지 않도록 한 달에 몇 킬로를 뺀다는 무리한 목표는 잊자. 쇠뿔을 단김에 뺄 수 있을 만큼 힘이 세다면 총력을 기울여서 원하는 일을 이뤄야겠지만 평범한 보통사람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면 이제는 조금 너그러워져야 한다. 동계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이 관중의 외면 속에서도 해가 갈수록 기량을 높이며 좋은 실력을 나타내는 것. 토리노에 울려펴진 애국가를 통해 진정한 가속의 의미를 깨닫는 사람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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