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35조 공약재원 2주만에 뚝딱 만든다니…

정부가 이달 중 135조원에 이르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마련 대책을 마련할 모양이다. 진영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이 기획재정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주문했다고 한다. 당선인 공약 306개 가운데 재정이 수반되는 252개 공약이 대상이다. 당선인 공약의 재원대책을 새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현 정부에서 수립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당선인의 확고한 의지가 엿보인다.

하지만 불과 10여일 만에 해마다 27조원씩 소요되는 재원대책을 수립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다. 나라살림을 맡은 재정부 스스로 더 잘 알 것이다.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이는 세출 구조구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역대 정부마다 손질하겠고 의욕을 앞세웠으나 10% 이상 줄인 사례가 없다. 반드시 지출해야 할 경직성 예산 비중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기초노령연금 확대 같은 공약은 국민연금 개편과도 맞물려 있어 더더욱 재원마련이 어렵다. 공약 예산 가운데 40%의 재원을 조달해야 하는 세제개편은 국민 부담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신중한 접근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그런데도 2주일 만에 급조하라는 인수위의 요구는 날림대책을 만들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숫자야 누군들 못 맞출까 싶지만 그런 날탕 대책으로 재원조달의 실효성과 합리성이 담보될 턱이 없음은 불 보듯 자명한 일이다. 오히려 재원배분을 왜곡하고 조세평형성과도 어긋날 소지가 다분하다.

물론 인수위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예산을 들어 무턱대고 안 된다고 하니 심기가 불편할 만도 하다. 그래도 재원대책은 기본적으로 분초를 다툴 성질의 것이 아니다. 무리한 공약이 없는지 재검토하고 공약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순리다. 지역개발공약 같은 것들은 타당성 여부에 대한 검증과정이 필수다. 10조원에 이르는 동남권 신공항 재원을 마련한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공항 입지가 밀양이든 가덕도든 이미 모두 경제성이 없다고 판명된 사안 아닌가.

공약이행을 위한 예산 우선배정이나 세제개편은 하나같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중차대한 과제다. 재원조달 방안 마련은 새 정부 출범 이후로 미뤄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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