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불도옹”/76년 현대서 독립 17개 계열사 일궈/연 200일 이상 해외출장·정도경영 유명정인영 한라그룹명예회장은 불편한 몸과 희수(77)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경영활동으로 그룹을 이끌어 오면서 「재계의 불도옹」으로 불렸다.
정명예회장은 최근까지도 정열적인 해외활동으로 지난 94년 2백5일(14차례), 95년 2백17일(17차례)에 이어 올해는 2백20일(18일)을 해외에서 보내 3년 연속 2백일 이상 해외출장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했을 정도다.
1920년생으로 고령인데다 지난 89년 7월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수족이 불편한데도 불구, 휠체어를 이용해 이같은 해외출장 기록한 것은 「기적」같은 일로 평가되고 있다.
정명예회장은 뇌졸중으로 좌반신마비가 오자 미국에서 장기간 입원치료를 받았으며 중국에서 한방치료 후 잠시 「홀로서기」에 성공했으나 상태가 악화되면서 다시 휠체어에 의지, 세인의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정회장은 그러나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30위 밖의 그룹을 지난해 14위로 올려 놓는 경영수완을 발휘했다. 다른 대기업 총수들과는 달리 서비스사업에 기웃거리지 않고 기계, 화학 등 중화학공업 등에 치중해 왔으며 정도경영을 강조, 지난해 비자금 사건 당시 30대그룹중 유일하게 연관되지 않아 국민들에게 깨끗한 기업인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의 바로 아랫동생으로 어린시절 서당에서 시를 익히고 학문을 닦았으며 14세때 서울로 올라와 인쇄소 문선공으로 일을 하면서 밤에 YMCA야간부에서 초등학교과정을 마쳤다. 그는 여기서 영어과 2년을 수료하고 16세때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팔이, 트럭조수, 빵장수 등으로 학비를 벌면서 미야자키(궁기)영어학교 야간과와 아오야마(청산)학원대학 야간 영어과 2학년을 중퇴한 후 귀국했다.
정명예회장은 귀국후 동아일보 기자로 잠시 일했으며, 51년 형의 요청으로 현대그룹에 들어가 유창한 영어실력을 바탕으로 미군납시설을 수주하는 등 현대그룹의 성장에 발판을 마련했다.
정명예회장은 지난 76년 현대건설 사장을 끝으로 현대를 떠나 독립, 17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는 오늘의 한라그룹을 일궈냈다. 그는 현대건설 사장으로 있던 62년에 중전기기메이커인 현대양행을 설립했으나 80년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완공단계에 있던 창원공장(한국중공업 전신)을 뺏기는 바람에 기업인생의 최대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는 창원공장을 빼앗긴후 자동차사업부, 해운부, 산림개발부 등 몇몇 사업부로 다시 일어섰다.
정명예회장은 자동차사업부를 오늘의 만도기계로 성장시켰으며 해운부를 한라해운으로, 산림개발부를 한라자원으로 키웠고 한라시멘트와 한라중공업을 잇따라 설립하면서 재기는 불가능하다는 재계의 불문율을 깬 경영능력을 보여주었다.<채수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