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근로시간 단축과 자동차산업


최근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노사가 내년 3월부터 밤샘근무를 없애 근로시간을 줄이기로 합의했다. 또 연내 관련 법 개정이 불투명해졌지만 고용노동부는 휴일근로시간을 연장근로시간(근로기준법상 한도 주 12시간)에 포함시키고 연장근로 규제 적용을 면제해주는 근로시간특례업종을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한 자동차산업의 경쟁력 저하, 특히 협력업체들이 직면할 어려움에 대한 조사ㆍ분석과 정책적 배려는 거의 없다.

협력업체 실적·설비투자 여력 악화

장시간 근로 관행이 있는 자동차산업의 1ㆍ2차 협력업체 17곳에 대한 인터뷰를 기초로 휴일근로 제한에 따른 영향을 분석해보니 생산량은 10%, 임금은 9% 줄고 이직률이 약 15~20%로 5%포인트 상승해 영업이익률이 10% 이상 낮아질 것으로 추정됐다. 1ㆍ2차 협력업체에 가장 부담스런 요소는 인건비 상승, 생산물량 감소, 제품원가 상승, 납기 지연 순이며 추가 고용은 발생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고용부가 기대하는 고용창출 효과는 거두지 못한 채 생산현장과 우리 경제에 큰 충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법을 위반하지 않기 위해 주야 2교대 근무체제를 3조2교대로 전환하려면 설비투자를 해야 하지만 상당수는 그럴 여력이 없다. 프레스 업계의 경우 설비 추가 없이는 휴일근로 제한에 따른 생산량 감소를 만회하기 어렵다. 3조2교대로 전환할 경우 단순 계산해도 임금 지급액이 50% 늘고 복리후생비(임금의 약 20%)가 추가로 발생하는데 대부분의 프레스 업체들은 공장ㆍ기계를 풀가동하고 생산성을 올리더라도 이를 커버할 수 없다. 결국 부채와 상환 부담만 늘어난다. 협력업체 간 경쟁이 납품단가 인하의 결정적 요인이므로 완성차업체가 협력업체의 투자비 증가에 상응하는 매출 확대를 보증해줄 수도 없다.

상황이 이러니 1ㆍ2차 협력업체들은 휴일근로 제한에 부정적이다. 따라서 실시하더라도 3년 정도의 유예기간이 필요하며 그 기간에 노사정이 충분히 논의해 1ㆍ2차 협력업체의 인력ㆍ설비확충 애로요인 해소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자동차 생산 선진국인 독일ㆍ일본ㆍ미국은 오랜 시간을 두고 고용안정 및 기업경쟁력 유지를 염두에 두고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했다. 다만 각 국가가 중점을 두는 과제는 달랐다. 독일은 산업경쟁력 유지라는 대전제 아래 서서히, 장기적으로 국가의 복지제도 개선ㆍ개혁과 함께 추진했다. 일본과 미국은 법정근로시간 이외의 근로시간을 엄격하게 규정하지 않아 기업들이 연장근로를 활용, 경제환경에 신축 대응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자동차산업의 근로시간 단축 논의는 고용안정, 기업경쟁력 유지 외에도 근로자의 소득안정ㆍ증대가 핵심 이슈에 추가돼 있어 독일ㆍ일본ㆍ미국보다 타협점을 찾기가 훨씬 어렵다. 1인당 국민소득이 낮고 복지체계가 미흡한 탓이다.

유예기간 인정·지원정책 강구해야

우리 자동차산업 1ㆍ2차 협력업체와 근로자들은 선진국 사례와 달리 휴일근로 제한에 따른 부정적 영향(생산ㆍ소득 감소, 납기 차질, 투자확대 여력 부족)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노사정은 긍정적 요인 최대화와 부정적 요인 최소화라는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해야 한다.

부채비율이 높은 1ㆍ2차 협력업체가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생산량 감소를 만회하기 위해 인력ㆍ설비투자를 하려면 정책자금과 산업ㆍ통화정책 측면의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 업종별ㆍ기업규모별 충격의 차이를 반영한 차별적 지원정책만이 자동차산업 생태계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실물경제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시간 근로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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