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은 폭력적이고 권모술수에 능하며 여성을 비하할까. 중국인 문예비평가 류짜이푸(劉再復)에 따르면 그런 성향이 강하다. 두 권의 소설, 삼국지와 수호전 탓이다. 번역서 쌍전(원제 双典批判)을 통해 작가는 두 소설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고별혁명, 면벽침사록, 전통과 중국인 등의 번역서로도 알려진 작가에 따르면 수호전은 폭력 일색이다. 호걸이라는 이규는 중요인물 포섭을 위해 네 살 짜리 아이를 도끼로 갈라버린다. 무송은 죄 없는 일가족 13명을 몰살하고도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인자한 성품이라는 송강조차 거리낌없이 한 집안을 몰살하고 지방 대도시 양민의 절반을 거리낌없이 도륙한다. 삼국지는 더 하다. 유비와 조조, 제갈공명, 주유 등 주요인물들이 하나같이 권모술수가 몸에 베인 자들이다.
중국을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이념은 마르크시즘이 아니라 쌍전의 폭력성과 권모술수라고 단정하는 저자의 미래 전망은 더욱 암울하다. 전파매체를 타고 두 소설이 더욱 더 중국인들 속으로 파고 들기 때문이다.
대안은 없을까. 저자의 해법은 두 가지. 첫째, 쌍전의 문학성만 취하고 그 이념은 버리라는 것이다. 두 번째 해답은 중국인의 원형문화 회복에 있다. 명저 '서구의 몰락'에서 스펭글러가 제시했던 원형문화의 개념을 빌리면, 중국인들의 당초 성품은 삼국지와 수호전의 확산을 통해 변질된 위형문화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산해경이나 도덕경, 옥루몽에서 보여지는 '사람을 뜨겁게 사랑하고 매사에 부드럽고 유연하게 대응하며 여성을 존중하는' 원형문화의 회복이 두 소설의 해악에서 벗어나는 길이라는 것이다.
책에는 수긍하기 어려운 대목도 없지 않지만 중국인들이 원형문화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만큼은 공감이 간다. 점점 힘이 커지는 중국이 수호전과 삼국지의 악영향에 빠진다면 한반도는 물론 국제사회 전체의 미래가 암울해질 수 있기에 그렇다.
한국인에게도 이 책의 주제는 낯 설지 않다. 정조대왕이 두 소설을 인심을 어지럽히고 사회기강을 문란하게 한다는 이유로 금기하기 훨씬 이전인 선조 때에 삼국지의 해악을 이르는 상소가 등장했었다. 중국 이상으로 두 소설을 읽은 독자가 많기 때문인지 십 수년전에는 삼국지 논쟁이 이념 논쟁으로 번진 적도 있다.
쌍전의 해악을 버리라는 권고 이외에도 이 책은 동서양의 방대한 사상을 여행하는 덤도 선사한다. 장자와 공자, 맹자에서 루쉰은 물론 막스 베버와 헤겔, 토크빌, 황런위 등 시대를 풍미한 철학자와 역사학자와 수많은 시인들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