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위기론’에 정부가 ‘침소봉대’라며 견제구를 계속 날리고 있지만 우리 경제에 대한 신뢰도를 가늠할 수 있는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잔뜩 위축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 직접투자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동안 한국에 투자했다 자금을 다시 찾아가는 출자금 회수 규모도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다. 외국인 직접투자는 국내 제조업의 탈한국화 현상을 완충해주고 신규 일자리 창출, 안정적 국제수지 운용 등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는 셈이다. 23일 재정경제부ㆍ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의 직접투자자금 회수 규모가 47억달러로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투자했다 떠나는 외국인이 늘고 있다=연도별 출자금 회수 추이를 보면 최근 들어 지난 2002년 이후 지난해까지 증가세가 계속되고 있다. 2002년에는 7억6,100만달러에 불과했으나 2003년 12억3,000만달러, 2004년 15억달러로 늘더니 2006년에는 47억8,000만달러로 통계 작성(67년) 이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연간 외국인 투자금액(신고기준) 대비 출자금 회수 비중을 봐도 예사롭지 않다. 2000년에는 출자금 회수 비율이 10.5%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5년에는 30.5%로 증가했고 지난해에는 42.6%로 껑충 뛰었다. 한마디로 지난해 연간 외국인 투자금액이 100원이라고 하면 42원이 다시 해외로 돌아간 셈이다. ◇기업은 떠나고 외국 기업은 들어오지 않고=해외투자 활성화 조치 등으로 인해 지난해 우리 기업의 해외투자 금액이 외국 기업의 국내 투자금액을 웃돌았다. 외국인 직접투자는 112억3,000만달러인 데 비해 해외투자는 184억6,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외국인 직접투자는 2004년 127억9,000만달러를 정점으로 2005년 115억6,000만달러, 2006년 112억3,000만달러로 하향곡선을 그려나가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을 떠나는 우리 기업은 앞으로 계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내에 공장을 하나라도 더 지어 일자리를 늘려야 하는 마당에 외국인은 한국을 기피하고 국내 기업들은 앞다퉈 국외로 탈출하고 있는 모양새다. ◇외국인 수혈 없인 한국 경제 흔들=외국인 투자의 한국 기피가 계속 이어질 경우 우리 경제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외국인 투자는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며 “산업 기반 활성화는 물론 안정적 국제수지 운용에도 필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김 연구원은 “경제특구만 놓고 보더라도 외국 기업이 찾지 않고 있다. 투자하고 싶어도 (한국에서) 수익을 거둘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다 보니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외국인 직접투자가 한국을 기피하고 있다는 것을 매우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를 위해 수많은 조치를 내놓고 있지만 경쟁국들은 우리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외국 기술ㆍ공장 유치에 혈안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와 달리 외국인 투자 유치를 놓고 한국과 경쟁할 수 있는 곳들이 많이 생겨났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을 떠나는 외국인이 늘고 투자마저 감소한다는 것은 그만큼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경영·생활환경 취약 주변국 견제도 심해
산자부, 한국투자 기피원인 분석 산업자원부는 최근 내놓은 '외국인 투자 유치 확대전략' 보고서에서 투자 기피 원인으로 ▦취약한 기업 경영환경 ▦ 비친화적 생활환경 ▦주변국과 경쟁 심화 등을 제시했다. 보고서에서는 취약한 기업 경영환경으로 우선 연간 30.8일의 노동손실일수 등 노동환경이 세계 하위 수준인 것을 꼽았다. 아울러 임금ㆍ조세 등이 경쟁국에 불리한 것도 들었다. 실제 산자부 분석에 의하면 한국의 평균 유효 법인세율은 24.3%다. 반면 싱가포르는 14.9%, 태국은 17.9%, 홍콩은 19.1% 등으로 우리보다 훨씬 낮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자녀에 대한 교육여건 등 인프라 부족과 외국인 투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 상존 등 생활환경이 경쟁국에 비해 뒤떨어지는 것도 한국 투자를 꺼리는 요인으로 지목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ㆍ싱가포르 등 주변국들은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에 경쟁적으로 나서면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 산자부의 지적이다. 중국은 거대 시장, 싱가포르는 선진화된 제도ㆍ문화ㆍ언어환경을 활용, 우리를 압박하고 있는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에 소극적이던 대만ㆍ일본도 경쟁에 뛰어들었다. 대만은 외국인투자허가제를 폐지했으며 일본은 오는 2012년까지 외국인 투자 잔고를 4배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 계획을 마련해 현재 추진 중이다. 반면 한국이 내세울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은 ▦세계 12위 무역대국 ▦해양ㆍ대륙을 잇는 지리적 여건 ▦우수한 인적ㆍ기술자원 등이다. 하지만 이 같은 장점 역시 점점 퇴색해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