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당초 마지노선으로 설정했던 달러 당 110엔이 마침내 힘없이 붕괴됐다. 이에 따라 당초 내년 연말에나 예상됐던 1달러=100엔 시대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엔화가치의 상승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게 나타나면서 미국이나 일본 모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미국은 당장 해외자금 이탈 및 이에 따른 금리 급등 가능성이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일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 상태다.
“셀 저팬(sell Japan)보다는 차라리 엔화 강세가 낫다”는 다케나카 헤이조 일본 경제재정성 장관의 말에서 엿볼 수 있듯 일본은 지금 엔화 강세에 따른 수출 경쟁력 약화라는 부정적 효과와 해외 투자자금의 일본 증시 유입에 따른 긍정적 효과를 두고 저울질을 하고 있는 상태다. 해외 투자자금이 몰려 오면 엔화가치는 그만큼 상승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심 불안한 미국=미국은 외형상 달러 하락을 반기면서도 급격한 절하 속도에 대해서는 적잖이 놀라는 모습이다. 달러는 지난 9월 20일 서방 선진 7개국(G7)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담 이후 엔화에 대해 3.7%, 유로화에 대해 3.5%나 하락했다.
미국 정부는 당초 시장에서의 완만한 조정을 원했지만 급격히 달러화가 하락할 경우 해외 투자자금의 이탈이 가속화하며 금리가 급등, 금융시장에 충격파를 던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폭은 국내총생산(GDP)의 5.1%로 위험 수위에 도달해 있고, 지난해 이후 달러 하락에도 불구하고 그 규모가 줄어들지 않고 있고 있다. 미국은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하루에 15억 달러의 해외자금 유입이 필요한데, 일본과 유럽 경제가 시원치 않기 때문에 해외에서 이만한 돈을 빨아들일 힘을 상실했다. 특히 달러 하락에 따른 수출 확대 효과는 내년 중순께나 가야 나타나는데 금융시장 혼란은 당장 미국 경제 회복 무드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있다.
◇시험대 오른 일본 환율 정책=환율의 급격한 변동은 시장을 어지럽힐 수 있는 만큼 시장개입을 하겠다는 것이 일본 금융당국의 일관된 통화정책이다.
그러나 G7 회담에서 유연한 환율정책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한데다 일본의 지나친 시장개입에 대한 미 의회 일각의 비난과 부시 대통령의 공개적인 우려 표명 등을 감안할 때 지금처럼 계속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히 미국이 방관하는 가운데 일본만의 시장 개입은 한계가 있다. 이와 관련, 외환시장 개입을 위한 올해 의회 상한선은 79조엔인데 올들어 9월말까지 이미 68조엔을 쏟아 부어 실탄도 넉넉치 않다. 시장에서는 이런 전후사정을 고려할 때 일본정부와 통화당국이 환율방어에 나서더라도 당분간 엔화강세 기조는 계속될 것으로 보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엔ㆍ달러, 당분간 105~110엔 사이에서 움직일 듯=시장에서는 엔 강세-달러 약세 기조를 전제로 엔화가치가 얼마나 빠르게 상승할 것인가, 바꿔 말해 달러 하락 속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외환 딜러들은 미국의 무역수지 불균형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엔화의 추가 절상이 불가피한 만큼 일본 역시 내부적으로는 달러 당 100엔을 새로운 방어선으로 설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더 이상 포기할 수 없는 마지노선으로 일본은 급격한 외환 충격을 막기 위한 시장 개입을 계속할 전망이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하면 엔화는 당분간 달러 당 105~110엔에서 움직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뉴욕=김인영 특파원,이병관기자 comeo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