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구호(暗口號)는 적과 동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미리 정해놓은 말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군중(軍中)에서 사용돼온 통상 세 글자 이내의 비밀스런 언어로 고려, 조선시대에는 군호(軍號)ㆍ적(的) 또는 언적(言的)이라고 불리었다.
1592년 조일전쟁 때 진주성은 치열한 전장이었다. 이때 사용된 암구호가 '에나가?'와 '에나다!'였다. '에나가'는 '(진짜로) 뱃속 창자가 흘러나올 때까지 싸울 준비가 돼 있느냐' '에나다'는 '(진짜로) 뱃속 창자가 흘러나올 때까지 싸울 준비가 돼 있다'란 뜻이다. 서부경남에서는 지금도 '에나가?' '에나다!'는 '진짜냐?' '진짜다!'라는 뜻으로 통용된다.
진주대첩은 조일전쟁 3대첩 중 하나다. 임진년 10월 김시민은 진주성에서 3,800여 군사로 3만 왜군을 대적했다. 성밖에서는 곽재우ㆍ김성일 최경회 등이 이끄는 경상도ㆍ전라도 의병이 왜군을 협공했다. 군인은 총포와 화살, 백성은 돌과 기왓장, 뜨거운 물로 공격했다. 7일간의 접전 끝에 적군 1만명을 사살하는 대승을 거뒀다. 이 전투로 경상ㆍ전라ㆍ충청 삼도를 지켜냈으니 이를 진주대첩 또는 제1차 진주성 전투라 부른다.
이듬해 일본은 6월 전군 총동원령을 내려 진주성을 공격해왔다. 최경회ㆍ황진ㆍ김천일 등이 이끄는 3,000여 군사와 6만 백성이 합세했다. 민관군, 남녀노소가 화살과 돌, 뜨거운 물과 불 짚, 기름과 횃불로 대항하며 9일 주야를 싸웠다. 최후까지 백병전으로 맞섰지만 중과부적이었다. 최경회와 김천일은 남강에 동반 투신했고 성안 6만 백성은 한 곳에서 왜군의 손에 참혹히 불타 죽었다.
왜장들이 촉석루에서 자축연을 열었다. 진주성 전투 최고의 영웅이었던 경상우병사 최경회의 부인(後妻) 주논개(朱論介)는 기생으로 위장해 동석하다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했다.
4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진주성에는 군관민이 하나돼 싸우다 산화(散花)한 영혼이 깃들어 있다. 남강은 진짜로 뱃속 창자가 흘러나올 때까지 싸우다간 조상의 구국정신을 기억한다. 조국을 유린하고 남편을 죽인 적장을 내 몸 바쳐 죽음으로 갚은 의로운 여인은 지금도 의암에 꼿꼿이 앉아 있다.
진주성 전투에서 군관민은 똘똘 뭉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그 의로움의 바탕은 바로 '에나다'정신이다. 나는 건배사를 할 때 '에나가?' '에나다!'를 즐겨 쓴다. 4,600명 관세청 직원, 나아가 백의민족 모두와 공유하고픈 이야기다. 공직에 있든 민간에 있든 구분 없이 '에나다'정신으로 힘을 모은다면 우리의 주권을 지킴은 물론 머지않은 날 세계 제일국으로 우뚝 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