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자원 버블이 글로벌 금융위기 불렀다

■ 금융내전 (리차이위안 지음, 시그마북스 펴냄)
자산·자원 가치상승 맹신이 대출 부추겨
실물 경제 시스템 마비… 최악 위기 초래
"금융 윤리 재정립·화폐-금융혁신 나서야"


지난 2008년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다소 진정 국면에 접어들자 미국 CNN 방송은 '금융위기 10대 원흉'을 조사, 발표한 바 있다. 당초 리먼 브러더스의 리처드 펄드 전 회장이나 앨런 그린스펀 전 FRB(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우선 순위에 꼽힐 것으로 예측됐지만 놀랍게도 1위는 '미국의 소비자'가 차지했다. 화폐철학자이자 금융위기 전문가인 저자는 CNN 방송의 조사 결과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소비자가 현재의 쾌락에 탐닉하고 무절제하게 소비 대출을 받으며 개인 및 가계 부채를 늘리고 나아가 국가 전체의 저축률 하락을 초래한 점을 고려할 때 소비자는 금융위기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300년 만의 최악의 사태로, 영국의 산업 혁명 이후 서양 세계가 발전시켜 온 시장 경제와 경제 이론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변화시킬 것으로 전망했다. 이번 위기가 300년 만의 최악의 금융 사태란 점은 이미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1월 영국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1.5%로 하향 조정했는데, 이는 1694년 중앙은행 탄생 이후 가장 낮은 수치의 금리이며 사상 처음으로 2% 아래로 내려간 사건이었다. 300년 만의 최악의 위기가 300년 만의 최저 금리를 탄생시킨 셈이다. 하지만 저자는 금융위기를 진단할 때 원인과 결과를 혼돈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금융업 자체는 하나의 서비스 산업으로 위기의 결과일 뿐 결코 위기의 본질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보편적인 견해로는 금융사기와 불균형한 국제경제 및 국제무역이 금융위기를 초래했고 금융위기와의 전쟁 과정은 금융 문제 및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글로벌 경제모델로 간주됐다. 그러나 저자는 이는 금융외전(外戰) 혹은 보호무역주의적 관점으로 서양주류경제학이 주창해온 외부요소결정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그 근거로 최대 소비시장인 미국의 연간 소비규모는 12조 달러지만 그 중 수입에 의존하는 규모는 2조 달러에 불과한 만큼 외부적 요인이 결정적이지 않다는 점을 꼽는다. 수출 규모가 세계 1위인 중국 또한 GDP가 약 5조 달러, 수출 규모는 1조 2,000억 달러로 GDP의 20~25% 수준인 만큼 중국 경제의 불균형 역시 수출이라는 외부적 요인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일련의 분석을 근거로 저자가 내세운 글로벌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은 '금융내전(內戰)'이다. 주류경제학에서는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한다는 전제 하에 현재 구매한 자산과 자원이 미래에 반드시 가치가 상승하므로 더 많은 자산과 자원을 사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는 소비와 투자 기능을 동시에 갖춘 소비 대출, 특히 주택 대출을 부추긴다. 이렇듯 과도하게 팽창된 자원 버블은 마치 흡혈귀처럼 서민의 돈을 빨아들이고 실물 경제의 시스템에 악영향을 미치면서 경제가 마비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이런 현상이 바로 '금융내전'으로 자원 버블이 금융위기의 원흉이고 지폐와 금융은 금융위기를 조장했으며 실물부문과 무역이 금융위기의 피해자로 전락한다는 게 저자의 논리다. 그렇다면 지금도 파장이 멈추지 않고 있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저자는 실물과 금융의 전통적 양자 관계에서 벗어나 '실물ㆍ금융ㆍ자원'의 삼자 관계로 경제학의 접근 방식을 확대, 발전시켜야 하며 이를 토대로 금융 분야에서 서비스 윤리를 재정립하는 한편 화폐와 금융의 혁신을 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이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 주류경제학과 다른 해석을 내놓으며 중국 등 신흥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측면이 있지만 금융 위기의 원인을 외적 요인이 아니라 내적 요인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은 새겨들을 만하다. 1만 5,000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