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아트 개척 현대예술 선구자 백남준씨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 별세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로 세계 이목 끌어
음악·미술·행위예술등전방위 예술가로 명성 높여




비디오아트 개척 현대예술 선구자 백남준씨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 별세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로 세계 이목 끌어음악·미술·행위예술등전방위 예술가로 명성 높여 홍병문 기자 hbm@sed.co.kr 1992년 7월 국립 현대미술관에서 자신의 예술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생전의 백남준씨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에게 예술 영역 간 경계란 종이 담벼락에 불과했다. 미학과 음악사를 공부하는 것으로 시작했던 그는 전자음악과 행위 예술(퍼포먼스)을 거쳐 비디오 아트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세우며 음악ㆍ미술 등 예술의 각 영역을 넘어선 전방위 종합 예술가로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1984년 전 세계에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생중계되기 이전만 해도 그의 이름은 국내에는 그저 기묘한 행위 예술을 하는 작가 정도로만 알려졌을 뿐이었다. 당시 뉴욕과 파리, 베를린, 서울을 연결해 펼쳐진 그의 비디오 예술은 ‘백남준’이라는 이름을 전 세계에 뚜렷하게 새겨 놓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정작 그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예술가로서 세상에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이보다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8년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현대 작곡가 존 케이지를 만난 뒤 그는 ‘존 케이지에 보내는 헌정’ 제하의 작품을 한 화랑에 전시한다. 존 케이지는 음악에 새로운 기법을 선보인 현대 음악사의 베토벤과 같은 인물. 케이지의 영향을 받았던 그는 1960년엔 ‘피아노포르테를 위한 연습곡’을 발표할 당시 무대 아래로 뛰어내려가 넥타이를 자르는 등 음악 무대를 객석으로 넓히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963년 백씨는 첫 개인전에서 장치된 비디오ㆍTV와 함께 피가 뚝뚝 떨어지는 갓 잡은 황소머리를 전시하고 피아노 한대를 부수는 기발한 퍼포먼스를 펼쳐 또 한차례 주목 받는다. 1964년 활동 무대를 미국으로 옮긴 그는 69년 샬롯데 무어맨과 공연을 하면서 비디오 아트를 예술 장르로 편입시킨 선구자라는 평을 받기 시작한다. 그가 현대를 대표하는 전위예술가로 본격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84년 인공위공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선보이면서부터. 그는 이어 86년 아시안 게임 때는 인공위성 프로젝트인 ‘바이바이 키플링’을 제작하고 88년 서울올림픽 때는 인공위성을 통해 ‘세계는 하나’라는 주제로 비디오 예술을 펼치면서 ‘비디오 아트’를 현대 예술의 주축으로 끌어 올렸다. 백씨는 1996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에도 독일 비디오조각전(1997), 바젤국제아트페어(스위스 바젤, 1997), 98서울판화미술제(예술의전당, 1998), 40년 회고전(미 산타바바라 박물관, 2000) 등 왕성한 활동을 계속했다. 그는 현대예술과 비디오를 접목시키는 데 기여한 공로로 '98년도 교토상', 한-독 문화교류에 기여한 공로로 '괴테메달'을 받았고, 2000년엔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한편 현재 경기도는 290여억원을 들여 용인시 기흥읍 상갈리 도유지 1만평에 '백남준 미술관'을 건립해 내년 10월 문을 열 예정이다. 입력시간 : 2006/01/30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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