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의 국회의원들 몇몇이 베이징에 와 중국의 자칭린 정협 주석과 왕자루이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면담했다. 의원 방문은 매년 이뤄지는 한중 간 의회 교류 활성화와 친선 도모를 위한 자리지만 이번에는 중국 측의 한미 서해훈련에 대한 경고의 장이 됐다. 왕 부장은 "한국이 미국과 서해훈련을 강행할 경우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와중에 미국은 이란 핵개발 의혹에 따른 이란 독자 제재 방안을 추진하면서 맹방인 한국도 스스로 독자적인 제재안을 시행할 것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취임 초기부터는 물론이고 특히 천안함 사태 이후 미국과 찰떡 공조를 취해왔던 한국 정부로서는 '이란 제재에 동참해달라'는 미국의 요구를 뿌리칠 수 없는 쪽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란 정부는 한국이 제재에 나설 경우 한국 제품에 대한 초고율 관세 등 강력한 경제 제재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지난 1970년대부터 한국과 이란 양국의 수도에 각각 테헤란로와 서울로를 만들어 친교를 다져왔고 이란을 위시해 중동에서 석유의 80%를 수입하는 한국으로서는 이란과의 경제단절이 심각한 경제 후유증을 낳을 것이 자명해 보인다.
약소국 입장에서 초강대국인 미국의 글로벌 핵 억제 정책과 미중 간 동아시아 패권 다툼에 끼여 선택을 강요당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동아시아의 지정학 구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균형 감각을 상실함으로써 샌드위치 신세를 자초한 측면도 있다.
논리적으로만 따진다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자국의 영해에서 한미 군사훈련을 하는데 대해 중국이 간섭하는 것은 맞지 않다. 그럼에도 중국이 강하게 경고하고 성토하는 것은 한국정부가 취임 초기부터 보여준 대북 고립 압박, 한미동맹 강화책에 불쾌감이 있었고 그것이 미중 간 동아시아 패권 다툼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곱씹어봐야 한다.
중국은 한미동맹을 냉전의 산물로 보고 있고 아시아에서 미국의 패권을 유지, 확장하기 위한 도구로 인식하고 있다. 천안함 사태에 따른 미국 항모의 서해 군사훈련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은 무엇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도움이 되는지 기준을 세우고 미국과 중국 사이의 외교 관계를 지혜롭게 설정해나갈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궤적을 보노라면 남북관계는 악화일로고 미중 대립으로 한반도의 통일로 다가가기 위한 6자회담 재개 여부는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을 맞아 통일세 도입을 꺼내들었다. 통일세 도입이 한낱 정치 선전 도구로 그치지 않고 한반도 통일을 위한 대북정책의 진지한 성찰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