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우리 기업들의 구조조정 규모와 속도가 아직 미흡하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정부내에서는 물론, 한국경제의 회복가능성을 예의 주시하며 평가를 유보하고 있는 해외 투자가들이 그렇다. 이들은 한국 기업이 얼마나 빨리 과감한 구조조정을 완료하느냐에 따라 한국경제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보고 있다. 구조조정은 신속하고 과감하게 진행돼야 성공할 수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빨리 한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돼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사업구조의 단순화 및 집중화를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세계시장에 내놓을만한 기업이 거의 없다. 재벌마다 자동차 반도체 조선 건설 등 주요 업종을 다 하나씩 같이 가지고 있는 상태로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을 일궈내기란 불가능하다. 외국에서는 업종마다 우리기업보다 규모가 크고 재력도 탄탄한 기업들이 한 곳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들은 엄청난 금액의 연구개발비를 투입해 가며 세계공략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여러 업종을 운영하면서 그들을 따라 잡을 수는 없다.
비즈니스 위크지 최신호는 세계의 자동차시장이 앞으로 6대 자동차회사에 의해 지배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리 자동차회사들은 생존가능성조차 불투명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주력업종을 4~5개로 한정하겠다는 재벌들의 계획은 과거에 비해서는 상당히 개혁적이나 미래를 내다보는 시각으로는 감을 못잡은 것같다. 자동차면 자동차, 반도체면 반도체 하나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둘째,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거의 모든 부문을 다 거느리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제품설계나 핵심기술 또는 최종 조립라인 정도만 보유하고 나머지는 과감히 외주(外注·아웃소싱)하는 것이 지식산업화 추세에 도 맞다. 특정기업이 제품개발과 기술개발, 부품생산및 조립을 다 잘 할 수 없다. 기업의 발전이나 생산성에 큰 관련이 없다고 판단되는 부문은 과감히 분사하거나 매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의 캔 스프 시장에서 75%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던 캠벨 스프사는 캔 스프 제조에 있어 완제품 생산에 필요한 모든 부문을 자체에서 생산·조립하고 있었다. 이 회사는 캔 제조나 양계사업은 기업 전체적으로 볼때 가치 창출이 안되는 것을 발견, 이를 과감히 매각했다. 그 결과 지난 3년간 4억5,000만달러의 원가절감을 가져왔고 이는 93년도의 순익보다 큰 금액이다.
셋째, 과감한 구조조정 노력과 함께 재무구조 개선도 시급하다. 우리 기업들의 부채는 지나치게 많다. 재원 마련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과감한 비전 제시와 함께 채권자들을 설득, 부채를 자본으로 전환하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일단 구조조정을 시작했으면 제대로 매듭을 지어야 한다. 경제가 조금 살아났다고 그동안 추진했던 구조조정노력이 후퇴해서는 안된다. 금융이나 기업구조조정만으로 끝나서도 안된다.
대대적인 정부조직과 공공부문개혁도 예고돼 있다. 기업의 발목을 잡고있는 규제도 대폭 철폐돼야 한다. 재벌그룹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경우 실업급증으로 사회적 갈등도 심화될 것이다.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늘리는 고용정책이 요구된다.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극복했다고 세계가 평가할 수 있도록 정부와 재계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