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는 1997~2005년 네 차례에 걸쳐 공무원연금제도를 수술했다. 경제성장률은 떨어지는데 인구 고령화가 가속화해 재정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가입자별로 최대 연금액을 탈 수 있는 나이를 65세로 늦추고, 가입기간도 35년에서 45년으로 연장했다. 연금을 산정하는 기준보수도 퇴직 무렵의 '월 최고 보수'에서 '45년 중 금액이 큰 40년 치 평균 보수'로 바꿨다. 가입기간 1년당 연금지급률도 2.29%에서 1.78%로 깎았다. 퇴직자에 대해서는 퇴직연도에 따라 2~1% 안팎의 재정안정화기여금을 내도록 했다. 현재와 미래 세대 공무원에 비해 보험료를 내는 기간은 짧지만 훨씬 후한 연금을 받는 만큼 고통분담을 하는 게 형평성에 맞는다는 취지다. 재직자 보험료율이 출생연도 등에 따라 12.55%에서 10%대까지 다양한 것도 이 때문이다. 2005년에는 우리로 치면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의 수급구조도 일치시켰다.
그런데 우리 정부와 공무원들은 이마저도 피하려고 한다. 정부는 얼마 전 가입기간 1년당 연금지급률을 1.9%에서 1.25%로 낮추는 새누리당안보다 개혁 강도를 낮추는 안을 내놓았다. 공무원들이 반발한다며 1.5%로 하자는 것이다. 퇴직자에게 2~4%의 재정안정화기여금을 거두자는 새누리당안에도 어깃장을 놓았다. "위헌 논란과 연금의 법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최관섭 인사혁신처 성과복지국장)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등에서는 고통분담과 형평성 차원에서 시행하고 있는데 은퇴자 등이 반발한다고 해서 위헌·연금제도의 안정성을 대응 논리로 내세웠으니 해괴망측하다. 새누리당의 국회 토론회 등에서 헌법학자 다수가 위헌이 아니라는 의견을 밝혔는데도 도무지 '소귀에 경 읽기'다.
공무원연금의 최대 수혜자인 은퇴자에게 고통을 분담하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세부적인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재정안정화기여금이 될 수도 있고 연금에 세금을 물리는 것도 한 방안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여당안에 어깃장을 놓고 있으니 정부와 여당의 꼴이 말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에도 개혁에 실패하면 재정과 연금제도가 파탄날 수 있다"며 누누이 강조해왔는데 정부는 왜 뒤늦게 이런 안을 내놓았을까. 그러잖아도 정부와 여당은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 개헌 논의 등을 둘러싸고 엇박자를 보여 왔다. 하지만 공무원연금은 공공 부문 개혁의 상징인데다 공무원 사회의 반발이 커 어느 정책보다 당정 간 치밀한 의견조율이 절실하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지고 내년 총선도 부담스럽겠지만 지금처럼 원칙도 없이 이익집단에 휘둘린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담하기 만하다.
정부는 당초 한국개발연구원(KDI) 용역안을 토대로 안을 만들었다. 하지만 '제 머리를 못 깎는 중(정부)' 대신 국회가 개혁을 주도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치자 새누리당은 KDI안 등을 토대로 '한국연금학회 용역안'을 내놓았다. 이마저도 미흡하다는 비판이 들끓자 일부를 보완해 다시 발표했다. 그런데 정부가 이보다 후퇴한 안을 내놓았으니 국민 여론과 국가재정보다 제 식구 감싸기에만 연연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정부안대로 시행하면 국민연금보다 얼마나 유리한지 비교하기도, 중장기적으로 수급구조를 일치시키기도 어려워진다. 박 대통령에게 공무원연금을 개혁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이런 하극상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국민 여론은 새누리당안보다 개혁의 강도를 높이는 것을 지지한다. 올해 57세인 연급 지급연령을 65세까지 늦춰가는 시기를 앞당기고 낸 돈의 5배가 넘는 연금을 타는 지속 불가능한 제도를 수술하는 게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여당의 과업이다. 오스트리아 등 선진국은 훨씬 전에 이 같은 개혁을 단행했다.
임웅재 논설위원 jael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