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비 동향을 보면 새 정부의 정책이 고소득층의 지갑을 완전히 얼어붙게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반(反)부자정서가 강해지고 새 정부 들어 과세당국이 지하경제 양성화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돈을 더 깊숙이 숨기는 것이다.
정부는 세금을 더 걷겠다며 지하경제 양성화를 화두로 내세웠지만 정작 소비 감소로 부가가치세가 오히려 줄어들어 역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24일 통계청에 따르면 소득 5분위(상위 20%)의 소비지출은 전년 대비 2.8% 감소한 396만6,000원을 기록했다. 다른 소득계층과 비교하면 고소득층의 소비심리에는 말 그대로 냉기가 돌고 있다. 소득 하위 20%인 1분위(-1.9%)를 비롯해 ▦2분위 -1.7% ▦3분위 1% ▦4분위 0.8% 등 다른 계층은 지출 감소율이 5분위보다 적거나 오히려 지출이 증가했다.
고소득층의 소비 감소폭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8년 4ㆍ4분기 -0.3% ▦2009년 1ㆍ4분기 -0.7% ▦2ㆍ4분기 -1.8%와 비교해도 현저히 크고 통계청이 2003년 전국 단위의 가계 동향 조사를 작성한 이후로도 가장 낮다.
올 들어 고소득층의 지출이 급감한 것은 최근 부자와 대기업에 대한 사회적 반감과 정부규제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거액금융거래정보에 대한 국세청의 접근이 확대되자 소득과 현금거래가 노출되기 싫은 부자들이 수입과 지출을 감추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금고가 많이 팔려나가고 금값 하락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만 유독 금괴 품귀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고소득층이 강한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음을 반영한다.
최근 전방위로 압박해오는 반기업정서 역시 고소득층에는 극도로 부담스러운 이슈다. 검찰의 비자금 수사와 갑을 논쟁, 조세피난처 논란 역시 소비심리 악화를 부추기고 있다.
문제는 소비시장을 지탱해야 할 고소득층의 소비가 위축되면서 경제는 더 위축되고 정부 지갑에도 구멍이 난다는 점이다. 부유층의 소비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성장을 돕는 요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억원당 취업유발 인원을 나타내는 취업유발계수는 소비가 17.1명으로 투자(13.1명)나 수출(9.4명)보다 오히려 크다.
또한 소비는 국세 세입의 4분의1을 차지하는 부가가치세 수입과 직결돼 소비가 위축될 경우 당장 세수에 빨간불이 켜진다. 지난 1ㆍ4분기 부가가치세 세입은 전년 동기보다 1조9,780억원이나 줄었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더 많은 세원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 결국 세수감소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흐르게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