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74로 하나 몰아놓고서 이세돌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 백이 84의 자리를 이을 수는 없다. 흑77, 79의 수순이 언제든지 흑의 권리이기 때문에 백이 똘똘 뭉쳐 다 잡히게 된다. 그러므로 좌변의 흑대마를 살려주긴 살려줘야 하는데 어떤 식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깔끔한 방법일까. 생각하던 이세돌은 백76으로 집어넣었는데…. "말도 안 되는 완착입니다. 흑이 받아줄 까닭이 없지요."(박정상) 백76으로는 그냥 참고도1의 백1로 뒷맛 좋게 막아두는 것이 최선이었다. 흑2로 끊을 때 백3으로 두텁게 보강했더라면 백의 필승지세였다. 이세돌이 실전보의 76으로 둔 데는 이유가 있었다. A로 내려서서 꼬리 부분 흑 5점을 아예 잡아버릴 심산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홍성지가 77 이하 81로 역습하자 순식간에 백이 궁지에 몰리고 말았다. 이세돌이 허겁지겁 82, 84로 제자리걸음을 하는 사이에 홍성지는 완벽한 외세를 선수로 만들고 공방의 요처인 흑87을 차지해 단숨에 형세를 역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수순 가운데 백80 역시 완착이었다. 이 수로는 무조건 참고도2의 백1로 버텼어야 했다. 흑2면 좌변의 흑을 살려주고 백3 이하 7로 중앙을 정비하여 아직은 백이 괜찮은 바둑이었다. "홍성지의 순발력이 이세돌을 압도한 장면입니다."(박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