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진 유엔 대표 "살해위협에 지하벙커서 야전식량 먹으며 지휘"

코트디부아르내전 마지막 2주 긴박했던 순간…
유혈사태 해결사 최영진 유엔 대표

아프리카 민주화의 시험무대인 코트디부아르의 유혈사태를 해결한 최영진 코트디부아르 유엔특별대표는 "내전 마지막 2주간은 그바그보군 저격병의 사격이 심해 작전수행 외에는 나가지 못한 채 지하벙커에서 야전식량으로 끼니를 때우며 버텼다"고 어려웠던 순간을 회고했다. 지난 2007년부터 유엔평화유지활동의 총책임자로 활동해온 최 대표는 지난해 11월 치뤄진 대선결과에 불복한 로랑 그바그보 전 대통령의 반란을 제압하고 코트디부아르 국민들이 선택한 정부를 지켜야 한다는 소임을 완수하고 뉴욕에 잠시 들렀다. 그는 22일(현지시간) 저녁 특파원들을 만나 코트디부아르 사태의 급박했던 상황들을 소개했다. 그가 머문 현지 유엔본부는 대통령궁에서 불과 150m 떨어진 곳. 내전이 심화되자 그바그보 측은 주변 건물 망루에 저격수들을 배치, 유엔본부에 사격을 가했다. 최 대표의 사무실은 방탄유리가 돼 있지만 수시로 회의가 열리는 회의실은 그렇지 못해 결국 저격수들이 퍼붓는 총탄에 유엔 직원 4명이 부상당하기도 했다. 최 대표는 "그바그보 부하들이 나를 살려둬서는 안 된다며 암살계획을 꾸미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며 "그들은 내가 테니스를 즐기는 것을 알고 테니스장 주변에 저격수를 배치했으며 여자를 시켜 독살하려는 음모도 꾸몄다"고 위기일발의 상황을 전했다. 아프리카에서는 올해 나이지리아, 차드 등 17개 국가에서 대선이 실시돼 민주화의 중대 기로에 섰다. 만약 코트디부아르 대선이 불공정하게 진행돼 권력자가 불법으로 정권을 연장하게 된다면 주변국가에 연쇄적인 파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반기문 유엔 총장은 이 때문에 이 나라를 아프리카 민주화의 시범모델로 삼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왔고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최 대표를 현지에 보냈다. 최 대표는 주 뉴욕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무차장과 유엔본부 평화유지활동(PKO) 사무차장보, 유엔대표부 대사 등을 지냈고 반 총장이 외교통상부 장관 시절 차관으로 함께 일했다. 또 그는 프랑스 파리에 유학, 아프리카에서 필수인 프랑스어에도 능통하다. 이번 내전상황에서도 반 총장에게 거의 매일 보고하고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전화나 인터넷 사정이 좋지 않아 집무실과 벙커를 넘나들며 수시로 연락했다"며 "급박한 상황이 전개될 때마다 격려와 지지를 많이 해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전에서 승리한 와타라 측에서 보복할 우려가 있었고 주민들 간에도 편이 갈라져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안정됐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11일 그바그보 전 대통령을 체포하기 전까지 그는 긴장된 나날을 보냈다. 민간인 사망을 최소화해야 했고 수도 아비장의 건물과 공장, 교량 등 SOC(사회간접자본)도 지켜내야 했다. 그는 "상대방은 물불 안 가리는데 평화유지군은 먼저 공격을 해서도 안 되고 중화기도 쓸 수 없는 등 많은 제약이 따랐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바그보 전 대통령을 살려둔 이유를 설명했다. 만약 그가 사망할 경우 그가 추종자들에게 선전해온 것처럼 국제사회의 개입에 항거한 순교자로 비춰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최 대표는 "그바그보 측이 시장에다 박격포를 쏘는 등 민간인을 살상하고 한국∙일본 등 각국 대사관을 공격하는 등 중대한 과실을 범했다"며 "이를 통해 유엔군과 현지 주둔 프랑스군이 공격 명분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최 대표는 그바그보에 대해서는 "그는 기본적으로 관대한 인물이었으며 처음에는 내게도 잘해줬고 유엔이 선거 승인을 하도록 초청까지 해줬다"면서 "하지만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결과를 조작하면서 관계가 멀어졌다. 그는 나보고 배신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선거에서 지고 권력을 유지하려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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