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피쉬'

‘박제’는 자연을 소유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가장 자연스럽지 못한 발상 중의 하나이다. 고래. 바다에 살고 있는 이 포유류가 땅에 올라와 박제로 남아 사건을 일으켰다. 영화 ‘언피쉬’(감독 로베르토 돈헬름)는 만화적 상상력으로 만들어졌다. 박제된 고래를 싣고 다니는 운전기사가 심장마비로 죽고, 고래는 한 마을에 덩그라니 놓여 있다.사건이 발생한 것은 아름다운 그의 조카 딸 소피 무어(마리아 슈레이더)가 도착하면서. 신부 마리아(에바 헤르치히)가 나타나지 않은 바람에 비참한 심경이 된 새신랑 칼(안드레아스 러스트)은 소피와 절망 속에서 정사를 나누는데, 기적이 일어난다. 도시로 갔던 신부감이 코 앞에 나타난 것. 인간의 호기심은 때론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마리아를 넘보던 바람둥이 란더가 소피와의 정사 중 그녀를 개로 만들어 버리는 재앙이 발생한다. 이때부터 소피는 온 마을 사람들과 한번씩 정사를 나누게 된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한가지. 누군가 ‘마리아가 사람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는 소원만 빌어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테니스장을, 우체부는 돈벼락을, 근엄한 신부마저 성령이 깃들기를 바라면서 소피의 심경은 더욱 다급해진다. 누가 마리아를 사람으로 되돌려 달라는 소원을 빌 것인가. 그녀는 바다로 가지 못한 박제된 고래처럼 영영 개로 남아있을 것인가. 섹스 한번에 소원 하나. 고래 뱃속은 기발하고 황당한 판타지의 공간이다. 그러나 소원을 이루어 주는 횡재, 횡재를 재앙으로 만들어 버리는 인간의 욕망 같은 단순한 동화적 구도만으로는 어딘가 허전한 구석이 있다. 영화는 판타지의 매체지만, 판타지가 곧 영화는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일까. 지난해 부천국제영화제에서 관객들이 선정한 ‘시티즌 초이스 상’을 받았다. 29일 개봉. 박은주기자 입력시간 2000/04/27 17:51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