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코가 1㎝만 낮았다면…”

프랑스 낭만극 '시라노 드 베르쥬락' 8일 막올려


“그대를 향한 내 마음은 비명이 될 뿐, 내 입맞춤을 글로 써 보내니. 그대 내 편지를 당신의 입술로 읽어주오.” 시인이자 검객, 철학자에 음악가인 시라노 드 베르쥬락은 17세기 낭만의 시대 최고의 매력남이다. 하지만 기형적으로 큰 코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 록산느에게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다. 대신 그녀를 연모하는 미남 사관생도 크리스티앙에게 편지 쓰기와 화술을 가르쳐준다. 크리스티앙은 록산느와 결혼하고 전쟁터로 떠난다. 시라노가 록산느를 진정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된 크리스티앙은 그녀에게 고백하라고 권유하고 전사하고 만다. 가벼움을 통한 묵직한 생각, 즐거우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감동, 현실적이면서도 재미난 상상이 가득한 프랑스 낭만희극 ‘시라노 드 베르쥬락’이 예술의 전당 토월 정통연극시리즈 다섯번째로 무대에 오른다. 1887년 말 파리에서 첫 무대에 오른 이후 연극ㆍ영화ㆍ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로 연출돼 주목 받았던 이 작품의 매력은 통쾌한 유머, 환상과 볼거리, 주인공의 관대하고 고독하지만 결코 낙담하지 않는 모습에 있다. 특히 극의 핵심적인 풍자는 외모 지상주의가 담고 있는 편견과 진정한 인간의 가치는 내면에 있다는 가치부여다. 국내에서는 71년과 92년 두 차례 무대에 올랐으나 무대와 번역 등에서 아쉬움을 많이 남긴 공연 중 하나다. 이번 무대는 번역가와 배우로 활약하고 있는 연출가 김철리와 러시아 국립연극원에서 유학한 오순한이 손을 잡았다. 13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리는 김철리 감독은 “코미디에 많이 기울었던 예전 공연에 비해 사회의 불합리를 질타하는 분노에 찬 인간의 순수성에 좀 더 무게를 두고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 다양한 시각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형식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선을 끄는 것은 배우들의 발성이 약하다고 판단한 김 감독의 지적으로 배우들의 연기지도를 강화한다는 점이다. 출연배우 모두 호흡, 발성, 발음만 한달간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연기지도를 맡은 오순한은 “배우에게 화술은 건축디자인과 같다”며 “연극은 말로 하는 예술인만큼 처음 대사를 듣는 관객에게 정확한 의미 전달이 필요하기 때문에 배우들이 화술에 대한 확실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1월 8일부터 27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02)580-1475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