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가 사무총장 선출문제로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이어 오는 11월 미 시애틀 총회및 각료회의를 앞두고 회의 개최비용 모금 문제를 둘러싸고 새로운 구설수에 휩싸이고 있다.오는 11월의 WTO 회의는 21세기의 새로운 국제무역의 틀을 짜는 WTO 회의 가운데 가장 중요한 행사. 이 회의에는 특히 134개 회원국에서 수천명의 사절단을 파견할 것으로 보이는데다 중국이 새로 WTO에 가입하면서 회원국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 역대 회의중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이 회의를 주관하는 미국이 행사비용을 기업체의 후원금으로 처리할 방침이라는 점이다. 후원금을 내는 업체들에는 지원금 규모에 따라 이 회의의 각종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되고, 이럴 경우 기업들의 로비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무역협상은 후원금을 낸 업체에 유리한 쪽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월 스트리트 저널이 18일 시애틀 회의 개최비용에 대한 기업체 후원 문제를 둘러싸고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고 보도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WTO 총회는 지난 95년 WTO 창설 이후 스위스 제네바와 싱가포르에서 각각 한번씩 2차례 열렸으나 당시 행사비용은 모두 WTO와 행사를 주최한 지방정부에서 부담했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같은 방식을 바꿔 이번 시애틀 회의 비용을 기업체 후원금으로 처리키로 했다. 미국은 최근 나토 50주년 기념행사와 아태경제협의체(APEC) 포럼 행사도 기업체 후원금으로 치렀다.
물론 미국은 기업체들이 시애틀 회의를 후원해도 단순한 후원에 그칠 뿐 무역협상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견해는 전혀 다르다. 후원업체들이 WTO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미국 관료들과 접촉, 의견을 개진할 경우 협상 우선순위가 바뀔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특히 나토나 APEC 회의와 달리 이 회의는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어 기업들의「입김」이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회의의 후원업체 면면을 보면 이같은 가능성은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이 회의의 주 후원업체는 미 보잉사와 마이크로소프트(MS)사. 이들 업체는 이 회의에 각각 25만달러를 후원한다. 또 이들 외에도 GM·포드 등 미국내 굴지의 회사들이 후원업체로 참여할 예정이다.
MS는 특히 이번 시애틀 회의에서 저작권 문제를 비롯한 지적재산권 문제가 주의제로 다뤄질 가능성이 높아 회의 결과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고, 보잉사는 경쟁사인 에어버스사에 대한 유럽의 보조금 지원 문제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보조금 지원 문제가 「불공정한 지원」쪽으로 결정나길 바라는 게 보잉측 입장이다. 따라서 행사 후원을 내세워 어떤 형태로는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시키려 할 것이란 게 행사비용 모금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시각이다.
시애틀회의 주최측은 오는 11월 이전까지 기업체들로부터 모두 950만달러를 후원 받을 예정. 또 기업체들의 후원금 규모에 따라 「에머랄드 등급」「골드등급」「브론즈 등급」등으로 구분, 각각 다른 특전을 부여할 예정이다. 「에머랄드 등급」에 포함돼 있는 보잉사의 필 콘디트 보잉사 최고경영자와 MS의 빌 게이츠 회장은 주요 리셉션은 물론 각료 만찬행사 등 각종 행사에 참가할 수 있다.
미국의 자연환경보호단체인 시에러클럽의 다니엘 셀리그만은 이와 관련,『샬린 바셰프스키 미 무역대표부 대표가 후원업체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환경문제 등 기업 후원이 적은 현안들은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며 후원금 모금 문제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이용택 기자 YTLE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