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5월20일 저녁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 앞.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장 후보 지지연설을 위해 단상을 오르던 중 괴한이 휘두른 문구용 커터로 얼굴에 자상을 입었다. 바로 다음날 검찰과 경찰은 합동수사본부를 설치, 조사에 들어갔으며 3일 뒤 가해자를 구속 수감했다. 이후 법원은 그에게 상해죄 등으로 1심에서 징역 11년을, 항소심에서는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10개월 후인 올 3월8일 저녁 서울 청담동 한 주점. 경호원을 대동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차남을 폭행했다는 이유로 종업원들을 쇠 파이프 등으로 위협했다. 또 장소를 이동하며 총 6명을 폭행했고 일부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됐다. 다음날 누군가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50여일이 지나서야 전면수사에 착수했으며 검찰은 그로부터 한 달 뒤에나 특별수사팀을 구성했다. 그리고 13일 김 회장은 피해자와의 합의를 사유로 보석을 청구했다.
이 두 사건은 가해자가 의도적으로 피해자를 폭행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사건 진행 과정에는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차이점이 있다. 사건의 관심이 사회적인 파워를 가진 자, 즉 첫번째 사건은 피해자인 박 전 대표에게 맞춰져 있고 두번째 사건은 가해자인 김 회장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검찰과 경찰이 두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도 사뭇 다르다.
88년 ‘지강헌 사건’을 기억하는가. 두 사건을 비교해보고 있자니 탈주범이었던 지씨가 마지막 순간에 외친 ‘유전무죄 무전유죄(돈이 있으면 죄가 없고 돈이 없으면 죄가 된다)’가 떠오른다. 수십 명에게 둘러싸여 쇠 파이프 등으로 구타를 당한 종업원과 문구용 커터로 자상을 입은 박 전 대표 중 누가 더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까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늑장수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구속 한달여 만에 보석을 청구한 김 회장과 징역 10년 판결을 받고도 살인미수죄가 적용되지 않았다며 최대 정당의 공식적인 비난을 받는 박 전 대표의 테러범 사이에 큰 괴리가 느껴질 뿐이다. 마침 한화가 ‘보복폭행’을 무마하기 위해 쓴 돈이 최소 7억원에 달한다는 기사가 입가에 씁쓸한 웃음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