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이후 급진전되고 있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 중국은 이를 경제가 아닌 정치ㆍ외교적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FTA 등으로 한국과의 유대를 긴밀히 함으로써 일본을 정치·경제적으로 압박하고 더 나아가 중국을 에워싼 경제블록을 형성하려는 미국의 시도에도 균열을 만들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청롄 중국 사회과학원 국제금융연구소 주임은 지난 4일 베이징 사회과학원 금융연구소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중한 FTA는 중국에 경제 문제라기보다 정치외교적인 성격"이라며 "중국은 한국과 먼저 협상을 타결한 뒤 한국과 연대해 일본을 압박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청 주임은 이어 "중국은 중한 FTA가 경제적 이익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만큼 연내타결 시한을 지키기 위해 많은 양보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이 미국의 동맹국으로 중국에 대해 군사적ㆍ경제적 압박의 강도를 높이는 상황에서 한국이 지적재산권, 투자 부문의 강한 개방 등 무리한 요구만 하지 않는다면 서둘러 FTA를 타결해 일본을 압박하는 카드로 사용한다는 것이 중국의 계산이라는 게 베이징 외교가와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중국은 이번 시 주석의 방한으로 미국과 일본에 충분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아태자유무역지대(FTAAP) 참여를 한국에 요구하며 미국 주도의 경제질서에 도전장을 던졌다. 특히 FTAAP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으로 아태 지역에서 중국을 포위하는 경제블록을 형성하려는 미국과 맞서는 체제에 한국을 끌어들이겠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일본에 대한 압박 공조는 과거사를 이용했다. 시 주석은 서울대 강연에서 임진왜란의 노량해전을 언급하며 한국과 중국이 일본에 공동 대응해야 한다는 충분한 논리를 만들어냈다. 또 박근혜 대통령과의 4일 비공식 오찬에서는 일본의 집단자위권과 고노 담화 훼손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4일 서울을 출발해 베이징으로 돌아가던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과 만난 왕이 외교부장의 말에도 중국의 속내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왕 부장은 이번 방한을 "친척집을 방문하는, 마을에 다니는 식의 방문이었다"라며 "목적은 양국민의 우호적 감정을 증진시키고 양국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성과보다는 한중 간 우호관계 확인만으로도 충분히 목적을 달성했다는 의미다. 그는 이어 "시 주석의 이번 방한이 천시지리인화(天時地利人和·하늘의 때는 땅의 이득만 같지 않고 땅의 이득은 사람들의 인화만 못하다는 뜻)'를 모으고 평화발전 협력을 도모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시 주석도 왕 부장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외교적 마찰을 고려해 일본을 비판하지 않았다. 이번 방한에서 중국은 한중관계 우호증진이라는 말 속에 경제보다는 정치적 계산을 우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