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며칠간 TV 화면을 숨가쁘게 장식한 「서해 대첩」은 우리 해군에게 이순신 장군의 「노량 해전」 이후 401년만의 쾌거다.「쾌거」라는 평가는 우습게도 적의 피해 규모와는 별 상관이 없다. 아무도 「어뢰정 1척 침몰, 경비정 1척 대파, 경비정 4척 파손, 적군 30여명 사상」이라는 전과를 「쾌거」라고 평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쾌거」라는 평가는 일단 과거에 대한 상대 평가로 볼 수 있다. 택시 기사가 북한 잠수정을 발견하고(96년), 어부가 그물로 잠수정을 잡아 주던(98년) 불과 몇 년 전의 「좌절」을 비추어 볼 때, 이번 교전은 「좌절」을 「자신」으로 반전시켰기 때문에 「쾌거」가 된 것이다.
이 쾌거는 물론 우수한 화력과 정보력이 뒷받침된 것이다. 그러나 쾌거의 뒤에 TV의 경쟁적인 보도가 가장 큰 몫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당시 북한의 어뢰정과 경비정을 겨눈 것은 76㎜ 기관포와 레이더뿐 아니라 TV 카메라도 있었기 때문이다.
TV가 전쟁에서 상당히 중요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것은 미국이다.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패한 것은 TV 때문이다. 미국의 TV는 처음에 성조기 아래 당당하게 진군하는 미군의 모습과 적지에 십자포화를 퍼붓는 우수한 화력을 영화처럼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지자 TV는 동강난 팔다리와 부서진 유골과 네이팜탄을 맞은 어린이들의 처참한 모습이 평화롭던 미국인의 거실에 뒹굴게 만들었다. 적은 역시 내부에 있었다. TV가 「처참한 전쟁」에 대한 반전 의식을 고조시켜 미군이 베트남에서 쫓겨나게 것이다.
이에 미국은 걸프전과 유고전에서는 TV를 절묘하게 동원했다. 적군의 전략기지를 외과 절제 수술하듯 미사일로 정교하게 제거하는 「깨끗한 전쟁」을 TV로 방영한 것이다. 베트남전이 피가 튀는 외과 수술이라면, 걸프전이나 유고전 보도는 정교한 레이저 수술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다.
TV는 이번 「서해 대첩」을 방영하면서 북한을 미국에 대항하는 이라크나 유고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76㎜ 기관포에 맞서 신발과 무 말랭이를 던지는, 고등학생 교복 같은 흰 와이셔츠를 입은 앳된 북한군의 모습이다. 이번 쾌거는 분명 TV의 승리였다.
팝콘과 부라보콘 밖에 모르던 우리에게 데프콘과 워치콘은 분명 생소한 콘이다. 서해에서는 14분간 포탄을 주고 받는 데프콘의 위급한 상황 이래, 동해에서는 관광선을 타고 부라보콘을 빨며 적지로 들어가는 모습은 분명 헷갈리는 장면이다.
이 헷갈리는 장면이 보내는 TV의 메시지는 「서부전선 이상없다」(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는 것이다. 그 것은 「햇볕정책 이상없다」는 정부의 메시지와 그대로 일치한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로 유명한 독일의 반전주의 작가 에리히 레마르크의 소설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다시 읽어봐야 할 때다. /기획특집팀 허두영 차장 DYHUHH@KOREALIN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