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서거] "강인함보다 인자함이 더 크셨던 분"

■ 노벨평화상 기념관 전시 DJ 초상 사진작가 박상훈 인터뷰
평생 대중 앞에 섰지만
카메라 앞에서만은 긴장
친구 아버지처럼 친근함도

노르웨이 오슬로 노벨평화상 기념관에 영구 전시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초상 사진. /제공=사진작가 박상훈

사진은 피사체를 객관적인 눈으로 잡아낼 수도 있고,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으로 그려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중성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서거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카메라 앞에서 어떤 모습이었을까. "민주투사나 정치인의 강한 이미지 보다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서의 인자한 모습이 더 컸습니다."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 선한 눈매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모습이다. 노르웨이 오슬로의 노벨평화상 기념관에 영구히 걸린 바로 그 사진이다. 이 사진을 촬영한 작가 박상훈(57)씨. 18일 오후 강남 신사동의 작업실에서 김 전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한 그는 잠시 숨쉴 틈을 달라며 한동안 말문을 열지 않았다. 그런 다음 자신의 무수한 '작품' 가운데 하나인 고인의 사진을 다시금 꺼내 들었다. 그리고 한국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고인을 만났던 그 때를 다시 떠올렸다. "2000년 수상 직후 이희호 여사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오슬로 기념관에 걸 김 대통령의 초상사진을 찍어줄 작가를 찾아 직접 포트폴리오를 살펴보셨다면서 말이죠." 당초 기념관에 전시될 예정이었던 다른 사진이 있었으나 이 여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새로 찍기를 청한 것이다. 고인은 그렇게 한 여인에게는 '멋있게 보여주고 싶은' 남편이자 남자였다. 2001년 1월 4일 박씨는 초상 사진을 찍기 위해 청와대에 들어갔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은 평생을 사람들 앞에 섰던 분이었음에도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어려워해 얼굴이 굳어 있었다"고 기억했다. "고작 30분인 촬영시간을 두고 '길다'고 해 '인류가 영원히 봐야 하는 사진이라 의미가 남다르다'고 말씀 드렸다"고 술회했다. 김 전 대통령은 전날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의 영수회담이 결렬된 직후라 기분이 썩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박씨가 긴장을 풀기 위해 대화를 청했고, 대선 당시 김 전 대통령의 유세 관련 방송물을 제작한 PD가 남동생의 부인이라는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찾아낼 때쯤 분위기는 밝게 무르익었다. 박 작가는 "가까이서 접하니 꼭 '친구 아버지'같은 친근함이 느껴졌다"면서 "노벨평화상에 걸맞은 편안한 모습을 포착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자애와 예리함이 공존하는 눈빛에, 민족의 앞날을 고민하는 정치가의 면모까지 담아낸 사진은 그렇게 탄생했다. 사진에 만족한 김 전 대통령은 같은 해 4월 부인 이희호 여사와 무궁화대훈장 수상을 기념하는 부부사진을 찍어달라며 박씨를 다시 청와대로 초청해 인연을 이어갔다. 작가 박상훈씨는 여명의 오묘함을 담은 새벽의 풍경을 십년 이상 촬영해 국내에서는 '새벽 사진의 원조'로 통한다. 우연히 찍기 시작한 인물 사진은 '피사체의 성격이 압축적으로 드러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5년의 간극을 두고 입술이 부르튼 노무현 전 대통령과 환하게 웃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포스터를 촬영해 청와대와는 남다른 인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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