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닮은 건물을 설계해주세요.” 국내 최초의 와인종합빌딩으로 건립된 ‘PODO PLAZA(포도 플라자)’는 이런 주문을 받고 탄생했다. 포도 플라자의 건축주는 와인 전도사로 잘 알려진 이희상 한국동아제분 회장. 이 회장의 요구는 이것이 전부였다. 포도 플라자가 위치한 강남구 신사동은 고급 브랜드 건물이 즐비해 있는 곳이다. 마치 파티에 가기 위해 화장을 짙게 한 건물들 사이에서 순수의 결정체인 와인을 닮은 건물을 짓기란 쉽지 않았을 터. 설계를 맡은 ITM 건축사사무소의 유이화 소장은 “인공적인 첨가물 없이 순수 포도만을 숙성시켜 깊은 맛을 이끌어내는 와인은 수확 당시의 햇살, 보존 상태 등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살아 숨쉬는 존재”라며 “포도 플라자도 자연 소재의 순수한 물성이 드러나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깊이가 더해지는 건물이 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포도 플라자의 하단부는 거친 느낌의 사비석을 사용했다. 유 소장은 이를 “와인이 가진 묵직함을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 때문에 포도 플라자는 건물을 둘러싼 주변의 매끈한 빌딩들 속에서 낯선 느낌을 주지만 그만큼 건물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지하 2층, 지상 7층으로 지어진 포도 플라자의 상층부는 이페 나무로 마감했다. 이페는 지구상의 나무 가운데 최고의 강도를 갖고 있는 나무 중 하나로 외부에 장시간 노출될 경우 고상한 은회색을 띠게 된다. 또 건축 시공시 따뜻하고 친근한 느낌을 주는데다 수십년 동안 인위적인 가공 처리가 없어도 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유 소장은 “상층부는 와인의 오크통(숙성을 위해 와인을 담아두는 나무 통)과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이페를 사용했다”며 “하층부의 돌과 함께 처음에는 풋풋한 느낌으로, 시간이 지나면서는 재료 자체가 가진 순수한 맛이 깊이를 더해갈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건물 상층부에는 개구부가 여러 개 있는데 특정한 패턴이 없는 게 특징이다. 이는 마치 포도 알갱이가 일정한 규칙 없이 생겨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자칫 돌과 나무가 주는 묵직함이 건물 전체의 이미지를 무겁게 할 수 있었는데 장난스럽게 펼쳐진 개구부들이 이를 막아주었다. 유 소장은 “재료가 갖는 느낌뿐 아니라 외관에서도 포도의 느낌이 전해지도록 구상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