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애그플레이션 막아라" 신흥국들 식량안보 사활 걸었다

中·러·印尼등 "식품값 통제 못하면 튀니지 꼴 난다"
금리인상·수출통제·곡물비축 등 비상 카드 총동원
일부선 "투기세력 자극해 되레 상승세 부추길수도"


'식품발(發) 인플레이션 쓰나미'가 신흥국 경제를 강타하면서 글로벌 이머징 국가들이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잦은 기후 변화로 인한 작황 불황에다 글로벌 유동성과 투기세력의 준동으로 식품 값이 치솟자 가뜩이나 식량 가격에 민감한 신흥국들이 전전긍긍하며 가격안정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들은 '애그플레이션' 차단을 위한 고전적 방법인 금리 인상에서부터 수출 통제, 수입 관세 폐지, 가격 상한제 도입, 식량 비축 등 모든 수단을 총 동원해 식품 값 통제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계획경제'식 조치가 식품 값 안정은 커녕 투기세력 가담을 부추겨 추가 가격 상승이라는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신흥국 정부의 무분별한 개입이 무역 마찰을 심화시켜 세계 경제에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부터 요동쳤던 식품값이 올해 들어서도 연일 기록 경신 행진을 이어가자 신흥국 정부들은 고삐 풀린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배수진을 치고 나섰다. 식량가격을 단속하지 않을 경우 소득 대부분을 식품 구입에 써버리는 저소득층에 폭동의 빌미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신흥국 정부에 직격탄이 되어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통령까지 외국으로 몰아낸 튀니지 시위도 식량값 폭등에서 촉발됐으며 알제리와 모잠비크 국민들도 고물가에 불만을 품고 잇따라 거리로 나서고 있다.. 이에 신흥국 정부는 인플레이션 차단에 '정석'으로 통하는 금리 인상 카드부터 꺼내 들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지난 4일 2년 만에 기준금리를 기존 6.50%에서 6.7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한파와 가뭄이 겹치면서 식품 값이 고공행진중인 중국도 지난해 2번의 금리 인상과 6번의 지급준비율 인상을 실시했으며 춘절(설) 이후 또 다시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이란 소문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고 있다. 그러나 식품가격을 통제하는 데 있어 금리 인상의 약발은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식품 값은 '금리'라는 거시적인 요인보다는 '공급량'이라는 미시적인 요인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에 신흥국 정부들은 별도의 후속 조치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신흥국 정부들이 가장 쉽게 손을 대는 것은 관세다. 인도네시아는 지난 달 27일 밀, 콩, 화학 비료, 동물 사료 등을 포함한 50여 가지의 수입 품목들에 대한 수입 관세를 폐지하기로 했다. 또 요리를 볶을 때 쓰는 팜 오일에 대한 수출 관세를 20%에서 25%로 인상하기로 했다. 팜 오일이 자국 밖으로 급격히 빠져나갈 것을 우려해서다. 잇단 시위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알제리도 지난달 초 설탕과 식용 기름에 부과하던 수입관세를 대폭 줄였다. 신흥국 정부는 수출 통제와 사재기를 통한 식량 비축에도 사활을 걸고 있다. 지난 2008년 식량 폭동으로 단단히 혼이 났던 신흥국들은 식량 반출을 통제하고 외국에서 식량을 긴급 공수해 만약의 사태에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 러시아는 사상 최악의 가뭄으로 지난해 여름 공표한 밀 수출 금지령을 올해 여름까지 계속 이어갈 방침이며 인도도 올해 초 렌틸콩과 식용 기름에 대한 수출 금지 조치를 내렸다. 인도는 또 최대 양파 공급국인 파키스탄이 양파 수출 금지를 통보하자 긴급 물밑 협상을 벌여 양파 1,000톤을 이달 안에 긴급 수입하기로 협정을 맺었다. 양파는 지난해 홍수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인도 현 정권의 존립마저 흔들고 있는 메머드급 핵폭탄이다. 인도 정부는 또 비상사태시 전국민이 80일간 먹을 수 있는 분량의 밀을 별도로 저장해 놓았다. 인도네시아는 자국 음식의 필수 양념인 칠리 고추 공급량을 늘리기 위해 자국민들을 대상으로 '칠리 고추 심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식품가격 폭등으로 고통 받는 국민들에게 3조 루피아(3억 3,000만달러 상당)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 민심을 달래느라 애를 쓰고 있다. 요르단은 설탕에 가격 상한제를 도입했으며 멕시코는 주식 또르띠야의 주재료로 쓰이는 옥수수 거래가격을 당분간 2011년 3ㆍ4분기 선물가로 고정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 같은 신흥국 정부의 긴급 조치들이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곡물 거래를 통제하고 인위적으로 비축량을 늘릴 경우 글로벌 투기세력의 매입을 더 부추겨 식료품값이 더 날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 쌀 3대 수출국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가 올해 초 120만톤 규모의 쌀을 사들이고 인도네시아도 80만 톤을 주문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한동안 소강상태를 보이던 쌀 값은 올 초 대비 다시 8% 치솟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알제리가 지난달 27일 80만톤에 달하는 밀을 사들였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밀 값도 랠리 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정부 시위는 밀 값 폭등의 또 다른 변수다. 모건스탠리의 후세인 알리디나 상품 분석팀장은 "시위 확산을 두려워하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정부들이 밀 사재기에 나설 경우 밀 가격이 더 요동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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