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과잉속 생존위한 증설경쟁”/“2000년 가동률 60%” 분석까지/제살깎기식 출혈경쟁→경영난 가중 악순환만/내수 급속침체 오일쇼크이후 “최악”「기아사태」가 한국자동차 산업에 근본적인 문제를 던지고 있다.
자동차산업이 심각한 위기국면을 맞고 있는 것이다. 한국차의 위기의 출발은 모순에 있다. 『공급과잉과 국내업체들의 수익성 악화로 앞으로 5년안에 2∼3개사를 중심으로 업계 재편이 예상된다.』(현대경제사회연구원)
『21세기 국제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업체당 연간 2백만대에서 3백만대 이상의 생산능력이 필요하다.』(쌍룡경제연구소)
두 연구소의 전망은 우리 자동차산업이 처한 「진퇴양난의 상황」을 잘 설명해 준다. 「과당경쟁」과 「생존을 위한 증설」이라는 모순된 국면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자동차공업협회의 한 임원은 『선진국들이 제기하고 있는 공급과잉론은 한국자동차산업을 견제하기 위한 주요 논리다』고 말하면서도 『최소한 2백만대 생산 체제를 유지해야 2000년대에 생존할 수 있다는 주장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결국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이 처한 위기의 배경에 공급확대가 크게 작용하고 있긴 하지만 보다 복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얘기다. 규모를 늘려야 살아남는다는 것은 분명한데 이에 따른 공급과잉 등 심각한 문제점은 국내업계가 안고 있는 딜레마다. 기아사태는 이런 상황의 구체적인 사례로 지적되고 있다. 자동차 위기는 「악순환의 총체적 고리」로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있다. 「불황 장기화로 판매부진사상 최대의 재고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과당경쟁낙후된 생산성수익성악화경영난 심화」의 악순환을 되풀이 하고 있다.
그 출발은 공급과잉이다. 프랑스의 르몽드는 기아사태가 발생하자 국내업체의 공급상황을 『살인적 수준이다』고 표현했다. 또 영국의 유명한 조사전문업체인 EIU는 『현재 계획을 그대로 추진하면 한국 자동차산업의 가동률은 오는 2000년에 60%를 밑돌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말 현재 국내 자동차업체들의 평균 가동률은 80%선이다. 국내 연구소, 자동차산업발전민간협의회 등의 전망도 이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기아경제연구소는 『오는 2001년께 총생산능력은 6백40만대 수준에 달하겠지만 내수시장의 성숙기 돌입, 아시아·중남미·동유럽을 중심으로 한 현지생산의 급격한 확대에 따른 직수출의 증가세 둔화 등으로 판매는 3백50만대선을 유지, 가동률은 55%를 밑돌 것』으로 내다봤다. 민간협의회, 미국 조사전문업체인 DRI, 영국의 EIU 등의 전망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자동차산업은 국제경쟁이 가장 치열한 분야다. 따라서 이 문제는 한국적상황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의 공급이 문제되는 것은 세계시장의 공급과잉이 그 원인이다.
이렇게 볼때 국내 자동차산업의 위기상황은 조업단축에 들어가고, 재고가 쌓여있다는 현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지난 5월 특집기사에서 『오는 2001년께 전세계 자동차 생산능력은 7천7백만대에 달하나 시장은 5천6백80만대에 불과, 무려 2천만대의 과잉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며 위기상황을 전망했다.
불황과 시장정체는 업계전체에 위기위식을 확산시키고 있다. 내수시장의 갑작스런 정체현상은 업계를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올 상반기중 내수는 72만4천5백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81만7천2백75대에 비해 11.4%나 감소했다. 감소율이 10%를 넘어선 것은 지난 80년 오일쇼크 이래 17년만의 일이다. 올해 전체적으로도 이런 추세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종대 기아경제연구소장은 『올해 전체적으로 1백56만8천대가 판매돼 지난해에 비해 4.6%의 감소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업계의 최근 판매전은 『누가 늦게 망하는지 경쟁해보자』는 형국이다. 사상 유례없는 제살깎기식 출혈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 지난 4월부터 대당 1백만원 이상의 손실을 보는 장기무이자할부를 계속하고 있으며, 대우가 2∼3년 뒤에 중고차를 반납하는 조건으로 차값의 60%만 할부원금으로 잡고 할부판매하는 제도를 도입하자 현대도 이에 동참,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전례가 없는 유리한 조건에서도 판매가 감소하고 있다. 최악의 위기다. 이런 판매제도는 곧바로 자동차업계의 재무구조를 악화시키면서 경쟁력약화의 주요인이 되고 있다.
위기에서 터진 기아사태는 국내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문제가 국내는 물론 세계적 관심사로 부각되는 계기가 됐다. 세계 유력언론들은 『기아사태로 구조조정은 불가피하게 됐다』고 보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삼성보고서파문 까지만 해도 주춤했던 구조조정론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통상산업부는 『가동률이 떨어지는 것은 불황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며, 장기전망을 갖고 공급과잉이 야기된다는 것은 업계의 탄력적인 대응을 무시한 것』이라며 구조조정론에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 문제는 앞으로 정부의 산업정책에서 최대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박원배 기자>
◎고임금 저생산성·만성적 노사분규도 원인/1인당 생산성 “일의 절반”/매년 5,000억 분규로 손실
「고임금·저생산성·만성적 노사분규 등 근무기강의 해이.」
「기아사태」를 계기로 이 문제가 한국자동차산업의 위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자동차업계의 경영위기는 공급과잉과 판매부진 등 여러가지 문제가 지적되고 있지만 일본 등 선진국의 절반수준에 그치고 있는 낮은 생산성과 고임금구조, 만성적인 분규, 노조의 동의없이 생산조절 조차 할 수 없는 구조적상황도 큰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완성차 업계의 1인당 생산성(연간 생산대수)의 경우 우리나라는 20.7대다. 이에비해 일본은 40.7대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일본의 절반에 그치고 있는 것.
완성차 1대 조립시간도 일본은 16.5시간인데 비해 우리는 30시간에 달한다. 물론 이런 격차는 생산설비의 차이가 그 이유 중 하나다.
낮은 생산성에 비해 자동차업계의 임금은 선진국 수준이다. 현대·기아·대우 등 자동차3사가 근로자 한사람에게 지급하는 평균급여는 연간 3만5천달러(달러당 8백90원기준으로 3천1백15만원). 이는 세계에서 임금이 가장 높다는 일본 도요타자동차(4만3천달러), 마쓰다(3만8천달러)보다는 낮은 수준이지만 미국자동차의 평균임금(3만5천∼3만7천달러)에 육박하는 것이다.
높은 임금상승률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각종 수당이 90개를 넘는다거나, 근로자 몇명이 자동차 라인전체를 세우는 파행적 노사관리는 자동차산업의 위기극복을 위해 반드시 해결돼야 할 과제가 되고 있다. 끝없이 되풀이되는 노사분규도 경영난을 가중시키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 매년 자동차업계는 분규에서 평균 5천억원의 손실을 입고 있다.<이의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