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문화독점 싫어도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


오는 27일 개막하는 서울경제 주최 '한중 창조경제혁신' 포럼 참석차 방한한 중국 모바일 게임업체인 텐룬홀딩스의 리쥔징 부사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콘텐츠 등에 투자할 3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모바일게임을 플랫폼 삼아 종합 문화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텐룬의 행보는 세계, 특히 아시아 시장을 놓고 벌어지는 글로벌 정보기술(IT)·콘텐츠기업 간의 치열한 문화영토 전쟁의 한 지류에 다름 아니다.

세계화로 국경이 무너지고 IT혁명으로 콘텐츠와 플랫폼의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는 중국 최대 영화제작사 '인라이트 미디어' 지분 매입, 중국 최대 동영상 공유 사이트 요쿠 인수 등 지난 1년간 문화콘텐츠에 투자한 돈만 5조원이 넘었다. 최근 내한한 마윈 알리바바 회장이 "문화콘텐츠나 문화 혁신과 관련한 한국 기업 투자에 관심이 많다"고 말한 이유다.

문화산업의 대형화·융복합·글로벌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 같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 속에서 글로벌 기업들이 플랫폼과 콘텐츠 모두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것이다. 이런 터에 영화 투자와 배급·극장을 함께하는 것이 '수직 계열화'를 통한 독점이라며 규제하는 것이 한국적 현실이다. 박근혜 정부는 미래 성장 동력으로 문화콘텐츠 산업을 적극 육성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수직계열화 문제 한마디에 공정위가 불공정 조사에 나서기도 한다. 냉혹한 글로벌 문화영토 전쟁에서 문화 독점을 규제 일변도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문화의 다양성은 정책 지원, 민간 기부 등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글로벌 문화영토 전쟁 격화일로

지난 1980년대 잘 나갔던 홍콩 영화산업이 자체 자본력과 시스템을 키우지 못해 할리우드 거대 자본에 먹힌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우위를 점했던 우리 게임산업은 자본력과 기술력이 밀리면서 중국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잠재력이 엄청난 아시아 시장에서 아직 한류는 우위에 있고 한국은 영화·드라마 등에서 아시아 최고의 콘텐츠 제작 역량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정부가 명확한 문화산업 철학을 갖고 한류를 바탕으로 한 글로벌 전략을 지원해야 할 때다. 문화예술의 다양성과 문화시장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중국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문화 대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책방향을 확고히 하고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등 전방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국의 최대 문화 기업인 CJ E&M의 지난해 매출은 1조2,300억원으로 알리바바의 지난 1년간 투자금액의 4분의1에도 못 미친다. 덩치로 보자면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수십분의1 수준이다. 세계 최대 온라인 스트리밍업체인 넷플릭스는 최근 드라마 시리즈 '마르코 폴로 시즌 2'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파라마운트사는 마르코 폴로를 블록버스터로 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동방견문록'으로 동서양의 접점과 양 문명 이해의 시발점이 된 마르코 폴로를 주목하는 것은 당연히 그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아시아시장을 염두에 둔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CJ가 배급한 영화 '수상한 그녀'의 중국판이 대박을 친 데 이어 베트남판이 제작에 들어간다고 한다. 수천억원의 블록버스터 작품을 할리우드 자본이 아시아·유럽에 내다 팔듯이 CJ도 그 정도 규모는 아니지만 문화시스템 수출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저서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는 인류를 지난 수백만년간 진화시켜온 유전자에 필적하는 새로운 유전자 개념으로 문화적 유전자 '밈(meme)'의 개념을 제시했다. 기존의 유전자가 무한한 기계적·물리적·화학적 자기 복제를 통해 종족을 유지하고 발전시켜왔듯 밈은 인간의 문화, 즉 상상력·미래·꿈·호기심을 복제, 확산시키는 강력한 마음속의 유전자라는 것이다.

콘텐츠 경쟁력 키울 비전 있어야

앞서 말했듯 세계화와 IT혁명은 온라인 등 거대한 플랫폼과 엄청난 자본을 탄생시켰고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문화기업들이 '밈'이라는 유전자를 세계인들의 마음에 확대 재생산시키려 하고 있다. 할리우드로 대변되는 미국 문화자본은 그동안 성공적으로 밈을 전파해왔다. 한국의 여자아이들 머리맡을 과거에는 바비인형이 차지했었다면 지금은 겨울왕국의 '안나'가 있는 이유다. CJ를 두둔할 이유도, 개인적 이해 관계도 없다. 다만 밈을 퍼뜨리기 위한 냉혹한 글로벌 전쟁에서 확고한 철학을 갖고 고군분투하는 기업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이병관 문화레저부장 yhle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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