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 1970년대의 아서 번스 전 의장처럼 생산성 둔화라는 복병을 만났다는 분석이 나왔다. 옐런 의장이 미국의 생산성 둔화 사실을 무시하고 임금인상 등 노동시장 개선을 앞세워 기준금리 인상을 미루다가는 저금리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촉발했던 번스 의장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7일(현지시간) "옐런 의장이 1990년대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보다는 1970년대 번스 의장 때의 문제에 직면했다"고 전했다. 저금리 정책을 폈던 그린스펀 의장은 실업률이 2000년 4월 3.8%로 30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는 등 고성장을 구가하는 가운데 물가도 안정된 '골디락스 경제'를 이끌었다. 1996~2000년 비농업 부문을 제외한 노동생산성이 연평균 3%나 향상되면서 기업들이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하고도 제품 가격을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번스 의장은 1973~1977년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연평균 1.5%에 그친데다 오일쇼크까지 겹치면서 소비자물가가 10% 이상 급등하는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 앨런 블라인더 전 연준 부의장은 "인플레이션 예측에서 중요한 요소는 생산성 증가의 장기 트렌드"라며 "옐런은 번스를 따라갈 위험에 처해 있고 초저금리 유지에도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실제 2009년 6월 이후 생산성 증가율은 번스 의장 시절보다 낮은 1.4%에 불과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연평균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2.3%다.
옐런 의장은 6월 실업률과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각각 6.1%, 2.1%로 목표치에 도달했지만 장기 구직자, 임금 상승률 등 노동시장 개선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조기 기준금리 인상에 회의적이다. 옐런 의장은 3월에도 현재 2%에 불과한 임금 상승률이 정상 수준인 4%에 이르러야 2%의 물가 상승률이 지속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급격한 임금인상이 없는 한 인플레이션 우려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준이 생산성 둔화의 파급효과를 간과하고 있다는 비판도 속출했다. 피어포인트증권의 스티븐 스탠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예상보다 미 국내총생산(GDP) 회복속도가 느린 반면 실업률이 급감하는 불일치의 원인은 생산성 둔화"라고 설명했다. 생산성 둔화로 미국 잠재성장률이 떨어져 있는 가운데 연준이 추가 임금상승을 기다렸다가는 인플레이션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실제 연준이 물가수준을 살필 때 참조하는 개인소비지출가격지수(PCE) 증가율은 3월 전년동기 대비 1.1%, 4월 1.6%에 이어 5월 1.8%를 기록하며 인플레이션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이미 인플레이션이 눈앞에 닥치고 있다"며 "연준이 너무 약하게, 너무 늦게 움직이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