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언은 누구인가

박철언 전 장관

한반도통일문화재단 이사장인 박철언 전 장관(정무, 체육청소년부)은 1985년부터 1991년까지 대통령의 전권을 위임받은 대북 밀사로 남북 문제를 담당했다. “‘한민족 공동 번영의 새 역사’실현을 위해 열정을 쏟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42차례의 남북 간 비밀접촉을 통해 김일성 주석, 허담 비서, 한시해 대표 등과 민족 문제를 논의하고 1985년 분단 후 최초로 남북 고향방문단·예술단 상호 방문, 1990년 서울과 평양에서 열린 남북 축구 교환경기,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의 남북 단일팀 출전 등의 결실을 거뒀다. 이를 바탕으로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이는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사상 첫 남북 정상회담에 앞서 진행됐던 남북 해빙무드였다. 박 전 장관은 “대북 밀사로서 수십 차례 유서를 썼다”고 말했다.

박 전 장관은 전두환 대통령 곁에서 입바른 소리를 곧잘 했으며, 노태우 정부에서는 황태자로 불리기도 했다. 또 1990년 3당합당의 각본을 썼으나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이 내각제 개헌 약속을 지키지 않자 갈등관계로 전환한 뒤 김영삼 정부에서 투옥되기도 했다. 이후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김종필·박태준 3인의 이른바 DJT(DJ+JP+TJ) 연대에 힘을 실으며 헌정사상 최초의 여야 간 수평적 정권교체에 이바지했다.

▦1942년 경북 성주 생 ▦서울대 법대 학사·석사, 미국 조지 워싱턴 법과대학원 및 조지타운대 수학, 한양대 법학박사 ▦대통령 정무비서관, 법률비서관 ▦검사장 ▦국가안전기획부장 특보 ▦청와대 정책보좌관 ▦정무장관 ▦체육청소년부장관 ▦13~15대 국회의원(대구 수성갑) ▦시인 등단 ▦일본 도카이대 객원교수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미국 보스톤대 객원교수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석좌교수 ▦한반도복지·통일재단 이사장(1987년~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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