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65> 쇼 미 더 '리스펙트'


힙합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Mnet의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쇼 미 더 머니’부터 ‘언프리티 랩스타’까지 매 회 방송이 시작되면 관련 내용이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휩쓸 정도죠. 기자가 이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힙합 음악을 접했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시원하다’ 입니다. 가사 내용만 놓고 보면 면전에 대고 하기 힘든 이야기임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리듬과 라임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면 듣는 것만으로도 짜릿하고 통쾌하달까요. 대중에게 힙합하면 연상되는 단어를 물으면 저항, 비판의식이 압도적입니다. 관련 뉴스 대부분이 누가 누굴 ‘디스(disrespect의 줄임말. 다른 그룹이나 사람을 폄하하거나 공격하기 위한 행동 혹은 노래를 일컫는다)’ 했다더라 식이라는 점도 한 몫 했을 테고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힙합 하면 ‘respect’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실력 면에서 인정할만한 대상에 대한 경외심 을 담은 가사나 또는 당신의 이런 면을 존중한다는 이야기 역시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오로지 ‘디스’만 신랄하게 하면서 그 누구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이들이 넘쳐나는 세상인지라 상반된 개념이 공존하는 힙합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꼭 TV를 켜야만 ‘디스전’을 들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점심시간 삼삼오오 모인 동료 직원들끼리 부장을 디스하고 부장은 또 다른 직원을 디스하고 하루에도 열 두 번씩 남을 지적하는 소리는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반면 아무리 귀 기울여도 ‘잘했다, 좋다’라고 서로를 격려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칭찬, 인정에 인색한 건 비단 특정 회사, 특정 직급에만 해당하는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디스는 잘하면서 리스펙트는 못하는 걸까요? 바로 모르는 것은 폄하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뭐가 그렇게 어렵냐, 이렇게 하면 되지’ 라는 피드백을 받은 직원은 분명 속으로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정 그러시면 본인이 해보시든지’.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해보지 않은 일에 ‘감 놔라 배 놔라’식의 훈수가 넘쳐납니다. 가끔은 도를 넘은 훈수가 촌극을 빚기도 합니다. 모든 직원은 소속된 팀과 직급에 따라 맡은 업무가 있습니다. 더 나은 결과물을 위해 조언을 할 수는 있지만 업무 자체를 부정하는 비난에 이르면 갈등은 일촉즉발의 상태가 됩니다. 훈수를 가장한 비난은 해당 직원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이고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존재 이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발단은 남이 하는 일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바라보는 시선이죠.

우리는 태어나 처음으로 친구들을 만나는 유치원에서부터 ‘타인을 존중하라’고 배웁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인정하라는 메시지를 대여섯 살 어린이에게는 그토록 강조하면서 서른이 다 된 성인들이 모인 직장에서는 왜 실천하지 못하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직장은 친구 만드는 곳이 아니라 일하러 오는 곳이라는데 적어도 모르는 일, 안 해본 일을 안 해도 되는 일, 없어도 그만인 일로 디스해서는 안되지 않겠습니까. 안타깝게도 동료 밥그릇은 깨지 않는 것, 서로 최소한의 리스펙트는 해야 한다는 상식을 잊어버린 사람은 왜 이리 많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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