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혁의 국제 금융시장] 3. 최강만이 살아남는 금융시장
덩치만으론 안된다-디지털 노하우 갖춰라
동물의 왕국과 국제금융시장. 둘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약육강식의 법칙'이 원칙이 철저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강자는 다시 강자로 되살아나고 약자는 철저하게 짓밟히는 살벌한 법칙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을 것처럼 보였던 세계적인 금융그룹들 조차도 현실에 안주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더 강자가 되기 위해 또 다른 인수합병이나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매진한다. 반면 약자들은 힘없이 도태되거나 동물들의 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강자에게 먹히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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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유럽에서는 대형은행들이 자기나라는 물론 거래상대 국가에서까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국경을 초월한 대형합병을 가속화 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규모를 키우는데 만족하지 않고 최강의 위치를 지켜나가기 위해 인터넷뱅킹이나 전자화폐 개발등 다양한 분야에 역량을 집중한다. '디지털 경제시대의 도래'와 '글로벌 경쟁의 심화'라는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에 걸맞는 경영노하우를 적극 개발하지 않고서는 금융시장에서 더 이상 강자로 남을 수 없다는 생존인식의 산물이다.
◇끊임없는 메가머저(Megamerger) 열기= 지난 98년 11월. 독일 도이체방크가 세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의 뱅커스트러스트를 전격적으로 인수, 국경을 초월한 합병을 전격적으로 선언한 것. 합병 당시 자산규모 세계 1위로 재탄생한 이들은 인력축소, 정보통신설비의 공동이용 등을 통한 경비절감에 나서면서 경쟁금융기관들을 자극시켰다.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는 대형화 또는 종합금융화를 겨냥한 크고 작은 인수ㆍ합병이나 업무제휴가 줄을 이었다. 일본 역시 다이치간교은행과 니혼고교은행, 후지은행이 합병을 통해 미즈호그룹을 설립한 것을 비롯 금융기관간 잇단 헤처모여를 통해 일본내 상위권이 아닌 '세계 상위권'을 끊임없이 노크하고 있다.
메가머저 (Megamerger)란 말 그대로 세계 최상위 업체간에 일어나는 거대합병을 의미한다. 금융업의 경우 통상 자산 10억달러 이상 금융기관간 합병이 여기에 해당된다. 메가머저의 열풍은 세계적 톱클래스 금융기관들의 규모를 갈수록 키워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스스로 메가머저 열기에 뛰어들고 있을까. 단순히 규모만 키우겠다는 목적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지각변동에 놀라지 않는다. 일종의 자연스러운 법칙처럼 여기고 있다.
과거 메가머저의 목적이 대형화였다면 지금은 '다각화'가 시장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90년대 후반까지는 시장에서 비용절감만을 요구했지만 이제는 새로운 성장원천을 원한다". 리만브라더스 유럽본사 최고경영자인 닉 라이언스는 메가머저의 목적을 이렇게 정의했다.
인터넷등 새로운 판매채널과 시장이 형성되면서 단순한 비용절감만으로는 더 이상 최강의 자리를 구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럽의 단일통화 도입등 글로벌화가 진전되면서 새로운 성장기회가 찾아온 반면, 인터넷과 같은 신개념 판매채널이 등장하면서 위기의식도 함께 확산되고 있다.
◇한국시장에서도 각축= '2010년까지 한국 금융자산에서 외국기관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40%이상으로 높아질 것이다'(맥킨지컨설팅그룹 보고서).
메가머저로 탄생한 소수의 거대 금융그룹, 즉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최강자들은 세계 금융산업을 지배하면서 우리나라에도 깊숙이 손길을 뻗치고 있다. 이는 부실처리도 아직 마무리하지 못하고 버둥거리는 국내 금융기관들을 한꺼번에 생존의 위협으로 몰아넣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시장개방 확대에 따라 외국 거대 금융그룹들의 국내 진출이나, 국내 금융기관에 대한 인수합병(M&A)은 거의 빗장이 풀린 상태. 이미 상당수 외국계 금융기관들은 국내 금융기관들에 대한 자본참여나, 인수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교두보를 확보해 가고 있다.
외환이나 국민ㆍ주택ㆍ한미ㆍ제일은행 등에서는 1대주주 또는 대주주인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직간접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독일 알리안츠가 제일생명을 인수하고 쌍용, 한진, 대유, 서울증권이 외국사로 변신하는 등 보험이나 증권 등 2금융권에서도 외국계 금융회사들의 진출이 활발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들과 제대로 대적할 만한 강자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금융구조조정'이라는 절박한 과제 속에 아직도 부실처리에 허덕이고 있다.
세계수준의 경쟁력 확보라는 거창한 청사진을 내걸고 타율적ㆍ자발적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지만 갈 길은 너무나 멀어만 보인다.
"한국은 이 시점에서 전문화로 갈 지 포괄적인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지 여부를 놓고 고민하는 것 보다는 탄탄하고 강력한 은행, 체질이 건전한 금융기관을 만드는데 주력해야 한다"(윌리엄 맥도너 뉴욕FRB 총재).
최강만이 살아남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홀로서기'가 불가능한 약자로 전락한 국내 금융기관들로선 아주 당연하면서도 실현이 어려운 '의미심장'한 말이다.
이진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