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과학」이 뜨고 있다.「겨레과학」은 우리 겨레가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오면서 일구어낸 문화유산 속의 과학적 슬기를 일컫는 학술용어. 「전통과학」이나 「민족과학」과 유사한 개념이다. 이 용어는 10여전 처음 쓰이기 시작했으나 최근 들어 20세기 서구 과학이 갖는 환경 오염 등 일부 부작용에 대한 「대안 과학」으로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겨레과학을 통해 우리 전통 제품의 우수성이 밝혀지면서를 이를 산업에 적용하는 사례도 크게 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잿물 옹기」. 잿물을 이용해 만든 옹기가 「숨을 쉰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지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충청남도 홍성에 있는 성촌옹기는 이를 사업화,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성촌옹기는 「잿물 옹기」의 경우 숨을 쉬기 때문 물 항아리로 제격이라는 판단 아래 최근 수도 꼭지를 단 「잿물 옹기」를 개발, 판매에 나섰다.
강원도 원주지역에서는 참숯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참숯이 불순물을 제거하는데 탁월한 성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됐기 때문.
조선 낫도 철강업계에서 깊이 연구해야 될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겨레과학이란 용어를 처음으로 정립한 대전 국립중앙과학관 정동찬 과학기술연구실장에 따르면 『조선 낫은 날 부분이 경도 64의 마르텐사이트로, 낫 배분이 경도 25.4의 베이나이트로 각각 구성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베이나이트는 70년대 유가 파동이 일자 미국 자동차 업계가 단단하면서도 차 무게를 줄이기 위해 개발한 쇠』라며 『일찍 겨레 과학에 눈떴다면 이런 신물질 개발에 훨씬 더 앞서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실장은 『이밖에도 옻·한지·기와 등 연구해야 될게 거의 무궁무진하다』며 『겨레의 과학슬기가 담긴 제품들은 하나같이 자연 친화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 환경오염을 줄이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겨레과학이 이처럼 우리 전통 제품의 우수성을 하나하나 입증해내자 정부도 겨레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한 대책을 다각도로 마련하고 있다.
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인력공단은 겨레과학을 계발하고 실업난을 해소하기 위해 95년부터 「민족 고유기능 전승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겨레 고유의 제품 생산 기술을 보유한 사람이 제자를 두고 사업을 확장할 경우 1인당 80만원 가량의 인력 양성 자금을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조달청도 이를 돕고 있다. 조달청은 전통 제품의 수요를 촉진하기 위해 최근 정부 조달 물품에 겨레의 과학 슬기가 담긴 제품 10여종을 포함시켰다.
과학기술부 관계자도 『최근 개최된 OECD 과학기술회의에서 세계 각국의 과학기술 대표들이 모여 환경오염 등 20세기 서구 과학의 부작용을 지적하고 21세기 과학은 지속 가능한 환경친화적 과학이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며 『이는 겨레과학의 지향점과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겨레과학이 오늘에 맞게 육성되면 과학 대중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국립중앙과학관 유창영 연구관은 『보통 사람은 과학을 어렵고 골치 아픈 것으로 생각한다』며 『이는 학교 교육이 생활 과학보다 서구식 순수 과학에만 치우쳐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상 제품을 가지고 그 원리를 찾는 작업이야말로 살아 있는 과학 교육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런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97년 2학기부터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조상의 슬기와 멋』이라는 단원에서 「한지와 기름먹」이라는 소단원이 생겨 겨레과학에 대한 내용이 처음으로 실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기존 과학계에서는 『우리나라에도 과학이 있었어?』하며 겨레과학을 무시하는 분위기도 적지 않아 겨레과학 발전의 방법론보다 인식의 전환이 더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균성 기자 GSLEE@SED.CO.KR
현대화된 옹기 매장. 겨레과학이 옹기·낫·숯 등 전통 제품의 우수성을 밝혀주고 있다. 전통 잿물 옹기의 경우 「숨을 쉰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지면서 옹기 개량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