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영암군 구림면 구림마을로 가는 길은 무척 고적하다. 너른 들판에 까치와 참새들이 날아오기도 하고, 어디선가 목청좋은 한 가락이 낮게 깔리면서 흙냄새와 함께 이리저리 오가기도 하고.그곳에 가면 흙의 축제, 일상의 사물이 예술품으로 변신하는 야릇한 경험이 있다. 옛날 언젠가 그곳의 흙을 구워 그릇을 만들었던 사람들을 기리고, 아직도 마을에 눌러앉아 사는 이들과 우연히 그곳을 들른 사람들을 위해 작지만 상큼한 축제가 열린다. 국내의 대표적인 젊은 미술작가들이 마을 곳곳에 설치작품을 심어놓은 것. 삶의 한가운데서 연출하는 미술행사인데, 그들의 작품들은 넉넉해보이는 산과 물, 그리고 논과 밭과 어울리고 옛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 생업을 이어가는 여러 흔적이 함께 한다.
마을 한가운데 자리잡은 영암도기문화센터 앞에는 육덕이 흐뭇한 당산목이 있는데, 가지마다 흙종이 너울너울 널려있다. 육근병이 연출한 이같은 장면은 마을 사람들의 소원을 도와주기 위한 것. 때마침 잔바람이라도 일지라면 사람들의 마음 깊숙이 숨어있는 생노병사의 굿거리가 힘을 받는듯도 하다.
이웃에 있는 정자에는 윤석남이 연출한 흰 고무신과 만난다. 정자 위에 쉽게 오르지 못했던 여인네들의 도발같기도 하고, 아니면 여인들의 근접을 거부하는 양반네들의 고집이 어울린듯도 하다.
까짓것 정자 위에 한바탕 흐드러지게 낫잠이라도 자고 이웃집에 들어서면 크고작은 흙덩이의 설치작품과 만난다. 이형우는 여러 농기구 또는 도자기 파편같은 것들을 질서정연하게 배열해놓아 이곳이 순식간에 일상을 미술로 치환시키는 현장임을 깨닫게 한다.
구림의 첫자가 비둘기(鳩)가 아니고 개(狗)였던가. 조덕현은 낡아 귀신이라도 나올 것같은 폐가 앞마당을 깊게 파놓고 흙으로 구운 개들을 심어놓았다.
마을 끝에 물이 있고 작은 배들이 떠있다. 왕인박사가 일본으로 떠나는 광경을 연출했다는게 작가 임충섭의 변이다. 그곳 주변을 거닐다 보면 피묻은 돌조각들이 널려 있다. 임충섭의 고약한 작품인데, 처녀막에서 흘러나온 피라고 하였던가. 다산(多産)을 축원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에서라고 한다.
그리고 나지막한 나무 주위로 뱀처럼 올라가는 돌탑. 임옥상은 마을 주민들과 이곳을 찾는 이들의 마음을 이 곳에서 한번 털어내라고 말한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큐레이터 박경미는 『현대미술의 첨단이라 불리는 설치미술이 이제 시골 한복판까지 들어왔다』면서 『마을사람들도 흐믓해하고 이 곳을 우연히 들른 사람들에게도 신선한 감동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축제는 이고장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을 개발하겠다는 영암군과 이화여대의 공동기획으로 만들어졌다. 행사는 6월 28일까지 열리며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에서 셔틀버스가 운영된다.
이용웅기자YYONG@SED.CO.KR
입력시간 2000/04/11 1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