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링크류나 기초소화제와 같은 약들을 슈퍼나 동네가게에서 팔게하는 문제로 공방전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 5일 규제완화 및 국민의 생활편의 도모를 위해 드링크나 진통제와 같은 일반의약품의 슈퍼 등 소매점 판매를 허용할 것임을 공식발표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와 이익집단인 약사회의 반발이 거세지자 발표 5일만에 슬그머니 한발 빼 『11월까지 총리 자문기구인 의료개혁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해 최종안을 내도록 한다』고 결정했다. 이에따라 보건복지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11일 열린 제도개혁위원회에서 단순의약품의 약국외 판매방안을 상정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대한약사회 역시 13일 과천에서 열기로 했던 대규모 정부규탄 집회를 취소키로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소비자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서 악순환이 연속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드링크류 등 단순의약품을 반드시 약국에서만 판매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정부가 국민 편익을 위해 추진한 정책이 소수 이익집단의 반발에 밀려 철회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부처간, 판매자와 소비자간에 「국민편의」와 「전문성」의 명분 아래 공방을 벌이고 있는 단순의약품의 약국외 판매에 대한 찬·반의견과 외국의 사례들을 알아본다.<편집자주>◎찬성/경쟁유도 국민선택권 확대/약국 휴일때 비상약 구입 불편해소/용법 널리 알려져 전문성 문제안돼/유승민 KDI연구위원
일요일 밤 소화제 몇 알을 사려고 차를 몰고 동네를 헤매면 굳게 닫힌 약국문을 보면서 내가 왜 이 고생을 해야 하는지 화가 치민다. 온갖 약을 집에다 사재놓고 살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생활이니 아마 이런 경험은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지금 단순의약품을 약국이 아닌 일반소매점에서 팔도록 허용할 것이냐를 두고 정부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고, 지성인이라는 약사들은 집단행동으로 이를 저지하겠다고 한다.
정부가 판단해야 할 일은 지극히 간단하다. 정부는 소비자를 보호할 것이냐 약사를 보호할 것이냐만 선택하면 그만이다. 소비자를 보호하는 정부라면 약사들이 뭐라고 하든 단순의약품의 일반소매점 판매를 허용할 것이고, 소비자들은 새벽 2시에도 동네 편의점에 들러 진통제를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 생활에서 불편하고 짜증나는 일을 하나 줄이는 셈이고, 가격경쟁으로 소비자 만족은 더욱 클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문제에 대하여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나 대한약사회는 반대하는데 그 이유라는 것이 모두 상식을 벗어난 이야기들 뿐이다. 우선 약사가 아닌 사람이 약을 판매하면 약의 오용, 남용이 우려되고 결국 국민건강이 위험에 처한다고 한다.
내 집앞 구멍가게에서 소화제를 사먹는다고 한 알 먹을 것을 세알씩 먹을까? 약사의 전문성이 필요한 약품은 당연히 약사가 판매를 담당할 일이나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단순의약품이란 말 그대로 부작용이 적고 사용방법이 널리 알려져 있는 것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전문성 운운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판·검사에세 물어보지 않아도 도둑질하면 안된다는 것 쯤은 다 알고 있다. 단순의약품에까지 약사의 전문성을 거론하는 짓은 국민의 수준을 얕잡아보는 발상이다.
언제 결말이 날지 모르는 의·약분업방안이 확정될 때까지 이 문제를 연기하자는 말도 말이 안되기는 마찬가지다. 단순의약품이라면 의약분업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 쯤은 다 아는 마당에 이 문제를 의약분업과 연계시키려는 주장은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
결국 이 문제를 둘러싼 핵심은 일반소매점 판매 허용시 경쟁이 격화되어 약국의 수익이 잠식되므로 약사들의 기득권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주장뿐이다. 규제개혁에 있어서 쉽게 접하는 기득권자들의 십팔번 애창곡이며 이는 정치적 압력이 되고 있다.
그러면 정부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선 대한약사회가 집단휴폐업과 같은 단체행동을 한다면, 이는 약사법 적용 이전에 전문직의 양식에 관한 부끄러운 현상이다. 또한 약사회가 여러 수단을 동원하여 판매경쟁을 제한하려 한다면, 이는 사업자단체의 경쟁제한행위로서 공정거래법이 엄히 다스릴 문제이다. 현재 보건사회연구원이 검토중인 의약품분류도 기득권 보호라는 결과를 만들지 않도록 공개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정작 문제는 보건복지부에 있다고 본다. 보건복지부가 소비자를 외면하고 약사의 손을 들어준다면, 납세자들은 비싼 세금을 내고 왜 이들 공무원을 고용해야 하는지 반문할 것이며, 보건복지부가 이익집단인 대한약사회와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없다. 경제부처가 관련 사업자들의 이익만 보호한다면 정부의 존재이유가 없는 것이다.
□약력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 위스콘신대 경제학박사
▲한국산업조직학회 사무국장
◎반대/약 오남용 등 부작용 불가피/다단계판매 통제 어려워 혼란 가중/약사처방전 없어 「약은 약」 망각처사/권경희 서울대 약대 강사
먼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단순의약품의 약국외 판매가 과연 국민의 편의성 증진을 위한 조치인가? 또 국민에게 아무 해가 없을까란 의문점을 갖게 된다.
단순의약품의 약국외 판매허용은 다음과 같은 현상을 예상케 한다.
첫째 의약품 판매량이 늘어난다. 이는 우리나라 국민의 의약품 소비가 늘어남을 의미하며 의약품 오남용의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각종 할인매장을 통해 의약품을 싸게 공급한다는 미명하에 박스단위 판매까지도 가능해질 것이다.
둘째 제약회사들은 자신의 의약품을 판매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의약품 광고에 투자하게 될 것이다. 자사제품에 대한 소비자 지명도를 높이기 위한 당연한 조치이다.
셋째 소위 다단계 판매망을 통한 의약품 판매가 가능해진다. 이런 루트로 팔리고 있는 다수 건강보조식품들에 대한 통제가 어려운 현 상황에서 의약품들까지 다양한 유통단계를 거쳐 합법적으로 판매될 것이며 이들 의약품에 대한 국가 통제는 더욱 어려운 상황에 놓이고 국민의 혼란만 가중된다.
외국의 합리적인 제도와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의료전달체계상 많은 모순점과 지나친 상업주의 때문에 세계 각국으로부터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미국을 예로 들어 의약품의 약국외 판매를 주장하는 것은 의약품의 의미를 과소 평가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다수 의약품들이 OTC(Over The Counter)라는 이름으로 약국외에서 팔리고 있는 미국의 경우 약국 개문시간은 보통 상오 10시∼하오 6시. 그나마 토요일엔 하오 2∼3시면 약국문을 닫고 휴일에는 영업하지 않는다. 자동차를 타고 움직이지 않으면 간단한 생필품조차 사기 어려운 미국의 경우와 걸어서 2∼3분이면 쉽게 약국을 찾을 수 있고 월요일∼토요일까지 상오 7시∼하오 11시까지 운영되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사정이 다르다.
의약품이 약국에서 팔리고 있으므로 인해 국민들은 원하기만 하면 의약품에 관한 조언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하오 6시 이후 약사의 조언을 구할 수 있는 곳은 흔치않다. 우리는 약국의 접근용이성이 뛰어나 일반 병·의원들이 문닫은 일과후에도 국민들은 약국에서 의약품 조제를 받을 수 있다. 약국외 판매 허용으로 의사나 약사를 찾지 않은채 어설픈 자가진단으로 오히려 질병을 키우는 등의 약화도 많아질 것이다.
또 잘못된 약물을 선택할 가능성과 이미 투약하고 있는 약이 있음에도 쉽게 구한 약을 병용투약함으로서 ▲약효가 증가되어 발생되는 부작용 ▲상품명은 다르지만 주 성분은 같아서 과용량을 투약하게 되는 경우 ▲음식과 약물과의 상호작용 ▲부적절한 보관에 따른 약효감소 등 더군다나 약국이라는 특수장소에서 벗어나 쉽게 약을 구함으로써 「약은 약」이란 사실을 쉽게 망각하게 될 것이다.
약사가 아니면 약국을 개설할 수 없고 약사 일인의 다수 약국운영을 규제하고 있는 국내 상황에서 외국 유통업체들이 국내 의약품유통시장을 파고들기 위해선 의약품의 약국외 판매를 강력히 주장하여 관철 시킴으로서 일반 의약품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이 가장 효과적이란 평가가 나온지 오래다.
때문에 기회가 주어질때 마다 의약품의 약국외 판매를 거론하고 국민의 편익제고라는 미명하게 관철시킬려고 하는 행위들이 슈퍼나 편의점같은 특정업체들의 매출신장과 관련되지 않았다고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약력
▲서울대 약대 졸업
▲미 필라델피아 약대 약학박사
▲현재 서울대 약대 부설 약학교육연수원 연구위원
◎외국사례/미국약사 약국·편의점 겸업사례 많아/영·독약국·소매점용 겉봉에 구분 표시
외국의 경우 단순의약품들은 약국이 아닌 일반소매점 판매를 허용하고 있는 나라가 대부분이다.
특히 우리의 경우 의약품으로 규정돼 있는 파스나 드링크류 같은 것은 모두 의약부외품으로 규정, 의약품이 아닌만큼 어디에서든지 팔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구태여 의약품으로 지정하지 않아도 될 단순의약품의 경우 의약부외품으로 분류하는 의약품 재분류 방안도 강구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먼저 미국의 경우 슈퍼에서 약을 파는 것이 일반화 돼 있다. 드러그스토아는 약국이 아니라 잡화점이다. 그러나 보니 대형슈퍼마켓 중에는 아예 약사를 고용해 약국코너를 맡도록 하고 있는 곳이 많이 있다. 반대로 약사가 편의점이나 슈퍼체인점에 가입, 약국과 편의점을 겸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영국이나 독일의 경우 「처방전약」이나 「약국에서만 판매 가능한 의약품」과 「슈퍼 등 소매점 판매가 가능한 의약품」을 구분, 이를 각각 겉봉에 표기해 놓고 팔고 있다.
스위스에서는 의사나 약사의 처방이 필요한지 여부에 따라 약을 크게 5가지로 구분하는데 이중 우리의 박카스나 파스 등과 같은 「E리스트」에 해당하는 의약품들은 슈퍼 등에서도 판매가 가능토록 하고 있다.
반면에 프랑스나 스웨덴 덴마크에서는 어떤 의약품이든지 간에 모든 의약품을 약국에서만 팔도록 하고 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는 지난 95년 3월 규제완화 차원에서 콘텍트렌즈용 소독액을 약국이 아닌 일반소매점에서도 팔 수 있게 했고 오는 98년중에는 단순의약품의 소매점 판매도 허용활 예정으로 있다.<신정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