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즈오카현의 대반란」을 일으킨 조선진은 흔히 「대기만성형의 기사」로 불린다. 안도 다케오(安藤武夫)9단의 문하생으로 수업을 시작한 뒤 84년 일본기원의 프로기사가 됐지만 그동안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86년 기성전 4단전 우승, 91년 신인왕전과 신예토너먼트 정상에 올라 신인상을 받은게 고작이다. 조선진보다 4년 늦게 일본에 온 유시훈이 94년 천원, 96년 왕자 타이틀을 획득한 것에 비하면 늦은 감이 있다.기보에 있어서도 「재기는 없다」는 게 주위의 냉정한 평가다. 국내 최정상급 기사인 S씨는 『조선진을 처음 봤을 때 이 친구는 바둑을 두면 안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천재성이 번뜩이지도 않고, 평범한 샐러리맨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우보(牛步」를 거듭하던 조선진은 98년 9단으로 승단했고, 같은해에 히코사카 나오토(彦坂直人)9단을 물리치고 혼인보 도전권을 획득했다. 지금 그는 『한 영웅이 자리를 떠났고 젊은 영웅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일본 마이니치 신문)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걸음이라는 것도 하늘이 준 재주인 모양이다.
70년생으로 광주 출생. 주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바둑돌을 잡았다. 그러나 학급 반장에다 공부도 잘해 아버지 조규성(趙奎成)씨가 아들의 진로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형도 서울 법대를 거쳐 행정고시를 합격했다. 아직 미혼. 본인은 『아직 결혼 계획이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