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등 5대업체 상반기 36억달러 손실
한때 일본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던 일본 반도체 업체들이 격변하는 시대에 제대로 적응치 못하고 침몰하고 있다.
도시바, NEC, 미쓰비시, 후지쓰, 히타치 등 일본 5대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올 회계연도 상반기(4~9월)에 총 36억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내년 3월에 끝나는 올 회계연도에도 이들 업체의 순손실은 80억달러 이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전세계 반도체 산업이 침체 상태에 빠져 있지만 유독 일본이 더욱 고전하고 있는 것은 일본 반도체 산업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고 12일 보도했다.
NEC 이사인 마츠모토 시게오 역시 "우리의 실적 악화는 단지 반도체 주기상의 불황 때문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일본 반도체 업체들은 시대 변화에 재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인 인텔은 반도체 시장에서 거두어들인 수익을 바탕으로 마이크로프로세스 분야에 집중 투자해 시장 지배력을 강화했고, 엔비디아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신형 게임기 X박스에 그래픽 칩을 제공하는 등 고수익을 내는 반도체 디자인 전문업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세계 반도체 시장의 43.5%를 차지하는 등 승승장구하던 일본 업체들은 이 같은 전략적 사업 모델을 찾는데 실패, 2000년 점유율이 27.8%로 하락했다.
한국 반도체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내세우며 등장하고 타이완 파운드리(수탁가공생산) 업체들이 비용절감과 규모의 경제를 내세워 일본 반도체 업체의 아성을 무너뜨렸기 때문.
또 일본 업체들은 관료주의에 발목이 잡혀 불필요한 공장을 폐쇄하고 과잉 인력을 감축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일본 반도체 업체들은 올해 자본 투자를 지난 93년 이후 최저수준인 29억달러까지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근시안적인 발상이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저조한 설비투자는 반도체 경기가 회복될 경우 시장점유와 기술 경쟁에서의 낙오로 직결된다는 것이다.
이들 업체들이 과잉 설비로 고전하고 있는데도 어느 하나 반도체 사업을 포기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도시바가 독일의 인피니온과 메모리칩 공장 매각을 논의중이고, NEC가 전직원의 3분의1을 해고하고 칩공장을 히타치와 합작으로 분사하기로 하는 등 자구노력을 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미쓰비시의 경우 지난 6년중 5년이 적자였으며 총 1,500억엔(12억5,000만달러)의 손실을 기록했음에도 불구, 반도체 사업을 강행하는 등 일본 대형 업체들 중 반도체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는 업체는 없다고 신문은 꼬집었다.
노희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