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권리는 하늘이 내렸나 마저리 켈리 지음/ 이소출판사 펴냄
최근 삼성, 교보 등 두 생명보험회사의 증권시장 상장이 무산됨으로써 15년동안 끌어왔던 가장 큰 경제현안중 하나가 또다시 표류하게 됐다. 보험회사측은 주식회사의 주식은 주주만의 것인데 상장 차익을 가입자들에게 분배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하고, 시민단체들은 보험회사가 오늘날 같은 규모로 성장하게 된 것은 가입자들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소위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을 주관한다고 하는 재정경제부는 이저저도 아닌채 양쪽의 눈치를 보며 원칙없는 공론만 일삼고 있다.
이번에 번역돼 나온 `자본의 권리는 하늘이 내렸나(the Divine Right of Capital)`는 자본주의의 기본 원칙중 하나로 인식돼 온 주주자본권에 대한 정면도전을 시도한다. 미국에서 기업윤리 활동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이 책의 저자 마저리 켈리는 주주들은 회사의 이익증대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않고 주가 차익만을 위해 주식을 사고 파는 투기꾼들로 회사에 자본을 공급하기는커녕 오히려 자본유출만을 일삼고 있다고 비판한다. 켈리는 이들 주주들을 위해 경영한다고 하는 기업들의 `주주자본주의(Stockholder`s Capitalism)`는 과거 봉건시대 귀족들을 위한 정치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것으로 종업원, 지역주민 등 다수의 이해관계자들을 포함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s Capitalism)`로 하루속히 대체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이처럼 주장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주주들이 주식을 거래할 때 주식을 산 자가 내놓는 자금은 단지 판 자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고 주식대금이 기업의 수중으로 들어가 자본을 공급할 때에는 가물에 콩나듯 있는 신주매각때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주식시장이 자본 공급기능을 상실한 지는 20년이 넘었다고 지적한다. 주주들이 리스크를 감당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생산적 리스크가 아닌 도박꾼들의 그것과 비슷하다. 오히려 기업들은 주가를 떠받치기 위해 엄청난 자금을 쏟아붓고 있고, 소진된 자금을 벌충하기 위해 일반 금융권의 대출에 의존하고 있다. 때문에 주가가 상승할수록 부채 또한 많아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며 주식시장은 기업을 자본화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탈자본화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오늘날 기업들은 주주이익 극대화에 목을 매고 있다. 자본 수입(주주 배당)은 수익이지만 종업원 수입은 비용으로 인식하는 현대의 회계제도에는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종업원들에게는 가급적 적게 주어야 한다는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 저자는 런던의 광고대행사 세인트 루크스, 브라질의 라 프렌자 등의 사례를 들며 주주이익 극대화가 아닌 종업원 이익 극대화를 위해 얼마든지 회계장부를 종업원이익+사내유보=수익-(주주배당+원재료비)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작성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사례로 든 회사들은 회계연도 시작을 전후해 자본에 지급할 적정 급여(예컨대 이익의 10%)를 산출한 다음 나머지 이익을 회사와 종업원이 50대 50으로 나눈다.
저자는 현대의 주식자본주의를 귀족 자본주의 또는 카지노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기여한 바는 별로 없으면서 기상천외한 머니게임을 통해 기업들이 내걸고 있는 주주자본주의의 혜택을 듬뿍 받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제 이러한 불합리를 끝장내고 기업경영의 책임과 결실이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경제원리를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의 시스템에서 봉건적 잔재를 털어내고 시장원리와 민주주의에 기반한 건강한 자본주의를 구축하는 것이 지난 18~19세기에 정치적으로 시작된 시민혁명을 경제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게 저자의 결론이다.
돌이켜보면 지금 우리나라는 지난 IMF이후 왕(재벌=세습 CEO)의 권한을 제한하는 대신 귀족(주주)의 권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CEO 임면에 대해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 왔던 주주들의 무한 권력이 엔론과 월드컴의 대규모 부정 사건으로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서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심각한 회의가 일고 있다. 이들 회사가 파산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회사의 경영진들이 주가를 올리라는 귀족들의 성화에 못이겨 외부 차입에 의존해 무분별한 주가 조작에 열중했기 때문이란 분석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왕의 권력을 제한하는 장치를 제대로 만들지 못한 우리의 자본주의가 주주들의 권력을 제어하는 장치까지 성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주주 자본주의에 대한 우리의 이해의 수준을 높이고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 자본주의는 어떻게 개조하고 구축해야 할 지 통찰력을 제공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강동호기자 eastern@sed.co.kr>